[이광호의 멍멍멍]

선별적 복지의 함정, ‘사각지대’

지금의 복지제도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금액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선별은 꼭 필요한 사람과 금액을 미리 정해놓고 그 기준에 충족하지 않으면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활고 끝에 유서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기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는 부양의무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부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선별적 복지제도 안에서 변화에 그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플리커

선별적 복지제도의 또다른 고민은 부정수급의 딜레마다. 서류상 조건을 충족하면 실제 소득에 상관없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데, 이를 막으려면 신청·증명·심사 과정을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 수급자가 법률적 문제로 지원받지 못하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부정수급 관리 인력과 비용도 증가한다. 복지 예산이 복지에 전부 쓰이지 못하고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데 소모되는 것이다.

실업급여가 대표적인 부정수급 악용 사례다. 실업급여는 본래 적극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지급한다. 하지만 취업에 성공하면 실업급여 지급이 정지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면접을 보고 서류상으로만 재취업 의지를 ‘증명’하면서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게 현실이다. 결국 기본소득보장제도와 실업급여 모두 ‘안 받아도 될 사람들이 받고 있는 거 아니야?’하는 불신만 키우는 셈이다. 이 때문에 수급 대상자들은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죄인 취급을 당하고, 세금내는 사람은 공돈을 날린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신은 복지예산 확보를 위한 증세에 걸림돌이 되어 복지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에 빠트린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안전망

보편적 기본소득은 자산과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에게 매달 일정한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성남시 청년수당과 비슷해보이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일정 기준에 충족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선별적 복지제도의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여러 복지제도들이 하나로 대체되면서 부정수급으로 인한 불신과 부정수급 관리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노동자들은 기업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해고당할까봐 무서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지원자가 넘쳐나는 기업에서는 해고하는 게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최소한의 생계 유지 안전망이 마련돼 노동자가 불합리한 관행을 지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업무에 맞는 합리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을 쓰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스스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핀란드는 올 1월부터 기본소득을 도입해 실업자 일부에게 2년간 매월 71만원씩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포커스뉴스

정치와 언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권은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거나 불리한 정책을 개정해주었고, 기업은 정치인의 편의를 봐주거나 정치자금을 전달하며 공생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알면서도 광고주인 대기업의 비리에 눈감고 제대로 된 비판을 내놓지 못했다.

이와 관련,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제시한 ‘정치 기본소득, 언론 기본소득’ 주장을 눈여겨볼만하다. 이는 정부에서 정치나 언론사에 후원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정 금액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정치와 언론을 국민이 직접 선택하고 후원하게 함으로써 부패한 정치와 언론, 대기업간의 고리를 끊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돈을 나눠준다’를 넘어 권력 재분배 의미

정치 기본소득, 언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국민이 직접 원하는 정당, 원하는 언론사에 후원을 하게 된다. 정치와 언론은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기업이나 국가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기에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돈을 준다’는 개념을 넘어 국가나 기업이 가진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의의를 가진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작동 기반 자체를 무력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상업 자본에 밀려난 문화, 예술분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트로피를 팔지 않아도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선별적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픽사베이

물론 그 많은 세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걸림돌이다. 하지만 정치의 임무는 무엇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최순실 관련 예산을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 문제제기한 사람도 없었고,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정책은 의지의 문제다. 실제로 성남시에서는 이미 청년수당을 시행했고, 서울시는 시행이 예정되어 있다. 증세를 하든, 낭비되는 세금을 조정하든 시행 의지만 있다면 단계적인 도입은 가능해보인다.

세월호, 메르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국가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상실했다. 생명도 인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린 각자도생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패스트푸드점에만 가도 기계로 주문을 받고, 은행 업무도 터치 몇 번으로 가능하다. 결국 로봇에게 일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사회에서 밀려날 것이고 최소한의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희생되는 사람들의 삶을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시급히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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