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해군 병사들이 목욕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해군 인방사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사회적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 모 대선후보가 외치는 ‘공정사회’의 구현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어쩌면 그곳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이야기한 타자의 고통에 자연스레 반감을 갖는 연민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존재 자체 그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노인은 노인의 모습이며 청년은 청년이다.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키 작은 인간인 것이다. 간혹 등짝이나 팔뚝에 벽화를 그린 사람들이 사회적 지배구조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그곳의 모든 공간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이상적인 공간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한다. 내가 이용하는 곳은 8000원이다. 그렇다. 그곳은 온 몸을 정화시킬 수 있는 목욕탕이다. 지갑, 명함, 옷가지를 모두 내던진 자들이 사회계약설을 완성시켰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 비상식적인 대통령을 볼 필요도, 심지어 머리 아픈 선거를 위해 투표를 할 필요도 없다.

Welcome to bath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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