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군대 시절, 갓 전입 온 이등병에게만 해당되는 규칙이 있었다. 내무반에서 말하거나 웃지 말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라는 것들이었다. 고참은 우리에게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라는 규칙을 말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등병이 건방지게.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라는 말은 학교에서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다니다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고참의 뉘앙스는 달랐다. “건방지게”라고 말하는 그의 두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걸을 때도 그 손은 주머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픽사베이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않는 것은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군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지키지 않았다. 단지 이등병들만 몇 달 동안 반짝 그러고 다닐 뿐이다. 군대 같이 서열 문화를 강조하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학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학 선배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신입생이나 후배들에게 강요할 때가 있다. 1학년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고, 복도에서 선배를 앞질러서 가면 안 된다는 식이다. 신입생이 선배를 만났을 때 인사법을 구체적인 매뉴얼로 정해놓은 곳도 있었다.

어떤 집단에서 약자들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면 강자에게 상대적인 특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전통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이런 잘못된 규칙들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곧 자신에게도 특혜가 주어질 테니 그저 참고 견딘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것보다 자신이 그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더 쉽고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자신도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구성원들 간에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상하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권력과 특혜가 주어지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를 노력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위)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포커스뉴스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지만 이러한 특혜는 감옥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 수감 됐지만 그가 누리는 특혜에 대한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보통의 독방보다 더 넓은 방을 배정받았고 그보다 더 큰 평수로 개조된 독방이 제공된다고 한다. 면회가 금지된 주말에 구치소장이 특별 면담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CCTV도 박 전 대통령의 방에만 없앴다. 심지어 교도관들이 수감번호 대신 ‘대통령님’ 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권력이며 결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의 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예우는 직책의 특수성을 고려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로 다른 재소자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최고의 권력을 누린 고위 공직자일수록 잘못에 대한 법 집행은 더욱 엄정해야한다.

큰 책임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법 집행은 일반 재소자들보다 권력형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에게 유달리 부드러웠다. 법은 만인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처럼 반복되선 안된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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