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전송]

들끓는다! 온 나라. 온 시간, 온 풍경이.
짧은 네 글자 “포토라인”이라는 단어 하나에 집중한다.
사진을 찍고. 찍히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는 선, 포토라인!

누군가는 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념하고 축하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비참과 치욕과 굴욕을 증명하기 위해 서는 곳, 세워지는 곳.

©픽사베이

한 걸음 앞, 칭송과 덕담으로 한꺼번에 만개한 사계절 꽃향기 그득한 꽃길이 있는가하면, 비난과 원망과 분노의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져 온몸이 빠지는 진창길도 준비되어 있는 매표소 같은 곳.

대신 서 줄 수도 없고 함께 서 줄 수도 없으며 어떠한 방벽도 한 걸음 앞에 놓인 길에 우회로를 만들 시간을 마련해줄 수 없는 곳. 그것이 이즈음을 사는 내게 최대 화두가 된 포토라인이다.

누구나 두 번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성과와 과오 상관없이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 어머니의 태를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출생의 순간이 그렇고, 바로 그때 즉시에 이미 준비되는 죽음의 순간이 그렇다. 말이 없거나 말이 사라지는, 나이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 따라서 그 어떤 다른 세상을 향한 혼자만의 출발선이 사람에게는 이미 그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번을 제외하면 어떤가. 사는 동안 자신이 서 있거나 서게 될 포토라인은 결국 자신의 기록을 누군가로부터 검증 받는 지점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자의 시각과 검증으로 마련되는 자리, 동기와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진술보다는 업적과 과오에 대한 세간의 수긍과 인정이 요구되는 자리. 그것이 세상에서는 정의와 공정과 순결이라는 문패가 되어 화인처럼 뜨겁게 새겨지는 곳.

오래된 일기장을 순서대로 펼쳐놓고 읽어가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고, 백일사진 돌 사진이 있는 앨범부터 현재까지의 내 모습을 꼼꼼하게 다시 보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어디 일기와 사진뿐이겠는가. 오래된 편지와 오래 간직해 온 사물들에게 닿은 시선이 불러오는 그때 시간과의 홀로 조우 앞에서, 나를 더듬어보는 날은 그래서 많아졌다.

나는 어떤 포토라인을 거쳐 왔을까?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세상과 하늘에 남겼을까?
내가 거쳐 온 포토라인 앞에는 어떤 길들이 나를 맞아 지금 여기, 이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걸까?
나를 찍고 내가 찍힌 세상의 카메라 속에는 내 어떤 모습이 엄중하게 담겨 있을까?

©픽사베이

살아오는 동안 누구나 수없이 서야 했을 포토라인 앞에서 사람은 저마다의 외로운 섬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섬! 둘레가 물로 둘러싸인 육지. 세상이란 파도 속에서 천 길 만 길 빠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안, 동서남북도 가늠할 수 없는 작은 땅덩어리가 되어 지구라는 세력의 한 켠을 채워주고 있는 작은 땅덩어리. 둘러싸고 있는 건 생태적으로 너무도 이질적인 물뿐, 그래서 섬은 세상 속 한 사람 한 사람과 닮은 꼴이다.

포토라인 앞에 선 사람은 외롭다.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훈장처럼 부착하는 자리이든 주홍글씨를 수인번호처럼 만천하에 새기는 자리이든 그는 혼자 다음 걸음을 떼야 하는 것이다. 라인 앞의 세상과 라인 뒤의 세상을 걸어가야 하는 이는 당사자 홀로이다.

그런 생각이 이어져서일까? 포토라인 앞의 사람은 어쩌면 그가 아니라 나이고,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이 건져 올려 진다. 그는 나와 상관없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내게도 있을지 모르는 빛남과 어두움을 나보다 먼저 들킨 사람이라는 생각도 뒤따라온다. 거기 그 사람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내 앞에, 자랑도 변명도 항변도 무력한 빙벽 같은 낭떠러지가 마련되어 있는 선.

©픽사베이

자의든 타의든 수없이 받아왔을 세상의 플래시 속에서 우리가 서 있었던 수많은 포토라인. 앞으로도 사는 동안 숨 쉴 때마다 서 있게 될 포토라인을 오늘 미리 발 끝에 그어본다.

누구나 포토라인 앞에 서 있다. 고백하자. 나는 어떤 길을 걸어 지금 이곳에 서 있는가.

과거는 신의 자비에, 현재는 신의 사랑에, 미래는 신의 섭리에 따른다는 말이 위로가 되는 봄날이다.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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