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궁금하다. 문화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홍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데 아직 문화에 대한 얘기는 없다. 하긴 문화야 당장 생명을 위협받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데 직접 필요한 밥도 아니니. 뒷전인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지난 대선 때는 아예 TV 토론 주제로 다뤄지지도 않았고, 단 한 번의 질문과 답변조차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남없이 ‘문화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설까봐 은근히 겁난다.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보고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과 어설픈 대화 한마디 나누고 기념사진이나 찍고는 마치 문화에 관심과 사랑이 크고, 마치 평소에도 문화를 즐기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할까봐. 아니면 문화가 만사인 것처럼 착각하는, 그래서 문화까지 정치와 진영논리 속에 빠뜨리는 그야말로 ‘적폐’를 반복할까봐. 아니면 문화란 깃발아래 또 다른 이념투쟁이나 할까봐.

그래서 이번만큼은 더 더욱 대선후보들의 문화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듣고 싶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가장 주된 수단이 문화와 체육이었고, 그 때문에 문화융성은 고사하고 문화와 문화정책을 초토화시켰으니. 그렇다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절대 안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듣자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사탕발림이나 하는 정책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것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문화철학과 문화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알고 싶다. 지난 10여년간 세상이 팍팍하다보니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일들이 많았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입만 열면 문화산업이고, 콘텐츠산업이고, 문화의 경제적 가치였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논리 속에 문화의 창의력과 다양성과 자유로움은 설 곳을 잃어가고, 국민들은 오히려 문화로부터 소외됐다.

문화는 사람이다

문화는 문화여야 가치가 있다. 문화가 정치가 되고, 경제가 되고, 이념이 되면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사람들이 즐기고 누린다. 그래서 모든 삶에 문화란 이름을 붙는다. 정신문화, 정치문화, 소비문화, 자연문화, 음식문화, 여행문화처럼

문화는 ‘함께’해야 한다. 어울리고 공감해야 문화다. 혼자만으로는 문화가 될 수 없다. 집단적이고, 지역적이고, 공동체적이다. 문화는 시간의 산물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널리 유행해도, 오랜 기간 쌓이고 반복되지 않으면 문화가 아니라 금방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한류도 처음에는 현상이었다. 역사적 유물도 언어와 풍습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시간’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이를 무시하고 마치 건물 짓듯, 공장에서 물건 찍어낸 듯, 문화로 자기업적 과시나 하려고 하다 문화를 망쳤다.

서울 인사동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광개토 사물놀이 예술단과 함께 전통악기 연주를 체험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문화도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지역과 시대와 인종에 따라 다양하고, 나름대로 진화와 변화를 거듭한다. 그 자체가 문화융성이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도 나쁘지는 않았다. 문화에 대한 방향과 정책도. 그러나 말뿐이었다. 아니 말과 정반대 짓을 했다. 국가의 문화 정책과 예산을 개인의 천박한 취미생활과 비선 실세들의 주머니 챙겨주는 것으로 악용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늘 좋은 문화만 살아남고,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보다 상처가 많고, 자존심이 무너지고, 갈등과 반목이 큰 지금 우리는 문화를 가져야 할까. 그건 감동의 문화, 누림의 문화, 자랑의 문화, 풍요의 문화가 아닐까. 문화는 ‘감동’이어야 한다. 감동은 공감에서 나온다. 좋은 문화는 ‘나’만이 아닌 모두의 마음까지 울리고, 그 울림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든다. 그것은 감동의 문화는 무엇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에 인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뛰어난 사상이나 불후의 문학, 예술 작품도 결국‘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다. 문화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동, 누림, 자랑, 풍요의 문화를

문화가 요란하다고, 크다고 감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도 안 된다. 문화적 감동은 소통과 통합의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독창성과 다양성, 자유로움부터 존중해야 한다. 그 속에서 창의력이 생기고, 곳곳의 작은 문화들이 살아나고, 경쟁력도 생긴다. 창작자가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그 문화 역시 행복한 것이 될 수 없다.

문화는 햇빛과 같아야 한다. 문화는 공동체, 즉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이기에 누림에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문화야말로 삶과 정신의 소중한 복지이다. 누구나 만나고, 어디서나 만나고, 언제든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계층과 연령과 지역이 다르다고, 신체적 장애가 있다고, 돈이 없다고 누릴 수 없다면 문화의 복지도 융성도 아니다. 문화체험과 배움도 그렇다.

©픽사베이

좋은 문화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준다. 그 ‘자부심’은 전통과 역사에서 온다. 박근혜 정부가 마치 문화의 전부인양 호들갑을 떤 옷(한식)과 음식(한식)에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과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과 사상이 스며있는 유적과 인물만큼 좋은 문화 자랑도 없다. 그것이 바로 문화 DNA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느끼는 것보다 좋은 동질성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문화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가져다준다. 문화가 번성한 고대 페르시아나 지금의 프랑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문화가 국력이고, 돈이고, 산업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이 허풍은 아니다. 가수 비틀스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소설 <해리포터>는 책과 소설과 부가상품으로 영국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문화의 꿈, 누구도 무너뜨리지 마라

문화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으면서, 첨단산업과 결합하면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고부가가치 상품이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문화가 중요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생산유발효과를 높이고 고용을 늘리고, 나아가 저비용, 무공해 지식과 감성, 창조산업으로 경제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다. 문화가 ‘돈’인 시대이다. 문화가 ‘돈’만 밝혀서는 안 되지만, 이제 문화없는 경제도 생각할 수 없다.

영화 한편을 수억 명이 보고 한마음으로 감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포켓몬고’처럼 게임이 증강현실과 결합해 세계의 청소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이 시대 문화이다. 꼭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한 권의 소설로 사람들이 어머니의 소중함을 되새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소통과 공감의 창(窓)은 없을 것이다.

©픽사베이

소수가 즐기는 ‘그들만의 문화’가 아닌 누구나 만나서 함께 웃고, 우는 문화만큼 행복한 복지도 없다. 그러니 어느 나라인들 문화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지금 세계가, 어떤 정부도 ‘문화’를 화두로 삼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대한민국 역시 한류를 통해 문화의 힘을 실감하고 있기에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문화정부를 원한다.

문화에 감동이 넘치는 나라, 그 감동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나라, 누구나 문화를 즐기고 문화로 마음을 열어 소통하는 나라, 물질적 가치에만 매달리지 않고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 수많은 위기와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맥을 이어온 전통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그 저력으로 창조적인 미래를 열어가는 나라,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경제적 삶까지 풍요롭게 해주는 나라.

누구도 그 꿈을 함부로 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이자, 정신이고, 자랑이며, 양식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결합이고, 시간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상징인 그 문화가 길을 잃고,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고민해야 한다. 문화를 위해 정말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로 잡을지를.

박근혜 정부에서 뼈저리게 실감했겠지만, 대선후보들이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문화는 ‘사람’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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