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이 300쇄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누적 발행부수가 137만부에 이른다니 스테디셀러입니다.

난장이 가족들이 겪는 사회모순과 도시화의 그림자를 잘 묘사했다 해서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작품이죠. 이 소설엔 굴뚝청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생소한 표현이 돼버린 ‘굴뚝청소’는 70년대만해도 가정이나 공장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경북 영천시 자양면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원생활박람회’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구들원리를 설명듣고 있다. ©영천시

공장굴뚝과 달리 시골집 굴뚝은 구들과 부엌, 아궁이로 연결됩니다. 아궁이 고래 굴뚝으로 이어지는 구들은 우리조상들이 고안해낸 독특한 난방시스템이죠. 위로 오르려는 불의 성질(양기)를 눌러 아래로 퍼지게 함으로써 방을 골고루 덥혀줍니다. 취사와 보온이 따로 이뤄지는 서구와 달리 취사에서 생긴 열을 100% 보온에 활용함으로써 열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래 부엌 부뚜막 부지깽이같은 표현들도 구들(취사와 난방)과 함께 생겼습니다. 구들은 ‘굳돌’ ‘구운 돌’에서 왔다는 게 통설이죠. ‘굳’은 불을 뜻하는 ‘긋’ ‘귿’에서 왔고...성냥을 ‘긋다’나 불에 ‘그슬리다’ ‘끄슬리다’의 어근 ‘긋’이 불의 뜻이며 ‘구운’ ‘굽다’도 화기에 익히는 걸 뜻합니다.

구들이란 단어에 ‘돌을 구워 방을 따뜻하게 하는’ 보온원리가 오롯이 담겨있는 겁니다. ‘온돌’이란 표현은 일제 이후 만들어진 말이며,그 전엔 구들로 불렸다하니 온돌보다는 구들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구들을 받치고 있는 고래는 우리말 ‘골’‘고랑’에서 왔고 골짜기의' 골'과도 같아 골+애(접미사)>고래가 됩니다.

고래와 구들에 불기운을 집어넣기 위해 불을 때는 입구가 아궁이. ‘아궁’은 입(口)입니다. 아구탕의 ‘아구’와 같고 아귀>아구>아구이>아궁이가 됐습니다.

아궁이 위에 솥단지를 얹은 부뚜막은 불+두막에서 ㄹ이 탈락돼 부뚜막>부뚜막으로 됩니다. ㄹ탈락현상은 부지깽이(불지팡이/아궁이 불을 헤치거나 땔감을 거둬넣을 때 쓰는 막대기), 부나비(불나비)같은 데서도 보이죠. 두막은 확연하지 않으나 머리를 뜻하는 ‘두’와 장막을 뜻하는 ‘막’의 합성어로 추정됩니다. 불이 타들어가는 머리부분에 솥단지와 함께 막처럼 둘러친 곳이란 의미로 부뚜막이라 불렀음직합니다.

공장굴뚝과 달리 시골집 굴뚝은 구들과 부엌, 아궁이로 연결된다. ©청도군

구들방엔 ‘부넘기’라는 게 있습니다. 궁중구들엔 없고 민간구들에는 있는 부넘기는 아궁이에서 생긴 재가 고래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작은 언덕’이죠. 불넘기에서 역시 ㄹ이 탈락돼 굳어진 용어로 ‘부넹기’ ‘부넙’이라고도 합니다.

부엌은 아궁이와 부뚜막을 포함한 공간.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곳으로 요즘 개념으로 주방입니다. 마른 장작이나 땔감을 쌓아두는 곳이기도 했죠. 때문에 학자들은 부엌이 불섶>부섶>부엎>부엌으로 바뀌어왔다고 봅니다. 여기서 섶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다’고 할 때의 ‘섶’과 같으니 부엌이 불(부)과 땔감(섶)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됩니다. 함축적인 조어입니다.

“급히 서두르는 모양의 ‘부랴부랴’는 불이야>부랴부랴로, 부리나케는 불이나게>부리나게>부리나케로 변했다(국어어원사전/서정범)”

같은 맥락에서 ‘불현듯’도 ‘켜다’는 뜻의 ‘혀다’가 불과 합쳐진 말이 됩니다.

구들엔 개자리라는 곳도 있습니다. 궁중구들에서 함실과 윗목, 굴뚝에 모두 개자리가 있고 민간구들에는 굴뚝 쪽에 있죠. 추울 때 개가 굴뚝 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해서 ‘개자리’로 명명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개가 어떻게 구들 속으로 들어가나? 의아스럽지만 구들과 굴뚝의 구조를 보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아궁이에 계속 불을 때다 보면 고래에 ‘깜정’이 눌러붙어 고래 폭이 좁아집니다. 구들의 ‘동맥경화 현상’이 나타나 열효율이 떨어지죠. 이때 집뒤에 있는 굴뚝의 아래 쪽에 구멍을 뚫고 긴 막대기에 짚을 묶어 아궁이쪽으로 밀어넣는, 굴뚝(고래)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이때 뚫린 구멍으로 개들이 들락날락했다는 게 개자리설(說)의 근거입니다.

얌전한 고양이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갔고 ‘얌전하지 않은’ 개는 굴뚝구멍으로 들어가 개자리에서 따스함을 즐겼던 게 아닌가…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