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세상]

영화 ‘문라이트’를 봤다. ‘제28회 GLAAD 미디어 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이 영화는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불안정한 성장기를 담담히 그려낸다. 감독은 소외된 흑인 계층, 동성애, 마약과 폭력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영화 흐름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영화는 흑인과 동성애라는 미국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약쟁이 엄마와 함께 사는 샤이론이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과정,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결핍으로 점철된 샤이론의 삶과 성장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문라이트’ 스틸컷 ©네이버 영화

눈길 끄는 것은 문라이트에서 주인공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문라이트에는 대사가 많지 않다. 주로 침묵을 지키는 샤이론과 흔들리는 배경,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배경음악이 영화를 채운다. 샤이론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주위의 소음들로 고통 받는 자신의 내면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약을 한 엄마가 소리를 지를 때 어린 샤이론이 두 귀를 막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 속 장면 묘사와 갈등 역시 적나라하지 않다. 카메라는 멀리서 바라보는 새처럼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비춘다. 전개가 다급하고 빠르지 않아 초반부분은 조금 지루하다. 하지만 끝을 향해갈수록 찰나의 장면마다 담아내는 의미가 남다르다.

문라이트는 표정이나 대사가 아니라 주인공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믿었던 친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다음날 학교 복도를 걷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르고 굽은 몸이 삐거덕거리며 매섭게 앞을 향해 나아간다. 백열등 아래 비치는 검은 피부는 수척하게 느껴진다. 그 메마름 안에는 오래도록 삼켜온 분노가 묻어난다.

문라이트가 돋보이는 이유는 특유의 담담함 때문이다. 구성이 잘 잡힌, 틀이 정해져있고 전달하는 바가 분명한 상업영화와 달리 흘러가는 듯 영상만 보여주는 데도 장면을 본 후에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게 된다. 문라이트는 조미료가 가득한 상업영화들 속에서 은근하게 빛난다.

바다, 해변 장면 역시 인상깊다. 이곳은 샤이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바다는 샤이론에게 어린 시절 세상을 알려준 의지의 대상 ‘후안’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또한 모래사장에 앉아 친구 케빈과 나눈 말과 행동은 샤이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 장면에서 샤이론은 말한다. “가끔씩 많이 울지, 내가 눈물방울이 된 것처럼”

말 수가 적은 샤이론은 시적인 말 한 마디로 결핍 가득한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이런 부분이 있기에 영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것을 다큐형식의 영화로 실제의 성장과정을 녹여낸 것처럼 풀어냈다면 진정성이 더해지고 이목을 끌지 않았을까 싶다.

‘문라이트’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는 전개가 더디고 갈등이 적은 만큼 지나치게 잔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은 여백에서 오히려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문라이트의 결말은 남다른 여운을 남긴다. 끝까지 서두르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케빈은 샤이론을 만나 묻는다.

“넌 누구야, 샤이론?”

진정한 ‘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 영화였다. 특히 엔딩 장면이 인상적인데 어린 샤이론이 해변가에서 돌아보는 장면이다. 시선이 멀리 있는데 마치 먼 길을 돌아온 어른이 된 샤이론을 바라보는 듯하다. 아니면 눈빛으로 대답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파도치는 배경과 어우러진 샤이론, 깊고 검은 두 눈 안에는 성장한 샤이론이 정말로 비치고 있을 것만 같다. 문라이트는 동성애 영화도 흑인 영화도 아니다. 그저 소외된 한 아이가 동성을 좋아하는 흑인이었을 뿐이고 홀로 힘겹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반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성장영화라고 하기에 희망적인 부분이 적다고 지적했다. 샤이론이 끝내 자신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 마약상이 된 점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왜소하고 힘이 없던 샤이론이 제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도망칠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완벽에 가까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관객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 속, 문라이트 같은 영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여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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