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I.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신문은 독자에게 아첨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독자들의 수준이 언론인보다 낮다고 지적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교만이요, 망발이니 당연히 피한다. 방송이 시청자를 태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형태에서든 독자를 비판하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면 부패정치인의 등장은 국민들이 투표권을 잘못 행사한 결과이며, 부실기업의 뉴스를 미리 탐지하여 발표하지 못한 것은 언론의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서로 공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언론과 국민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약진적으로 선진화된 모습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언론이지만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muckraking(추문 들추기) 저널리즘’에는 약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절대권력이나 정권에는 부단히 도전하면서 소소할 수 있는 부정부패를 파헤치는데 약한 까닭은 어쩌면 과거 사건의 침소봉대, 과장보도로 떠드는 사이비언론의 폐해로 인한 피해망상에서 오는 차별화나 우리나라 언론의 특질이라고 볼 수 있는 지사적인 태도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픽사베이

20여년전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수도 없는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으며, 주민소환제도로 부정부패를 막아보겠다고 하지만 지방정치의 부패가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때에 검찰과 경찰의 조사뿐만 아니라 지방언론, 전문언론의 비리 감시기능이 필수인데 과연 이제까지 지방언론이나 전문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다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나위가 없다.

조그만 도시의 자치단체에서 지역유지나 동네 양반 같은 지역 상류계급과 권력이 결탁하여 부정부패하는 일, 이런 일은 어느 사회나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오늘의 아프리카 촌구석에서도 있는 일이다. 이런 때에 몇몇 지식인이 또는 한두 명의 시민이 삐라나 벽보식의 대자보를 만들다가 테러를 당하고 생명을 잃으면서도 추문을 폭로하여 부정부패를 막고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전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니 정치와 국민을 잇는 언론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 남미와 구공산권 등에서 수많은 언론인들이 암살을 당하기도 하고 피신하는 사태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정치권 전체를 두루뭉술 합쳐서 큰 대상을 목표로 비판공격은 하면서도 사소한 대상의 추문들추기의 역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연구의 대상이다.

II.

최근 들어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성향을 나타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신문이라면 으레 불편부당, 엄정 중립을 표방한다.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몰라도 항상 중립을 표방한다. 이에 비해 미국은 사설이나 칼럼과 뉴스보도를 ‘분명히’ 구별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나라나 좋은 신문이라면 사설 내용은 사주와 논설위원실에서 만들어지고 편집국 쪽에서는 이와는 별개로 객관적인 보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기획되고 의도된 기사나 보도 내용으로 은근히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우리나라 신문과는 달리 미국의 신문들은 사설에서 특정후보를 분명히 지지한다. 선거법과 선거 문화, 국민정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 까닭도 있겠지만 선거에 임하는 언론의 양태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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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한꺼번에 선거를 많이 한다. 어떤 때는 투표용지 앞뒤로 수십 개의 항목이 있다. 이때에 지역신문이나 전문신문들이 지역사회와 특정계층을 위해서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의미로 미국에서는 전국지보다 지역신문이나 전문신문이 더 중요하다. 특히 시골 신문들과 특수 전문신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민생에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 영향력을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미국 45대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고 당선됐지만, 그것이 트럼프를 지지한 언론이 많았다거나 그에 따른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함부로 추측할 수 없다. 다만, 신문이 이렇게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것은 그만큼 독자의 수준이 높아서 평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풀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지 조선일보와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신문은 분명히 ‘색깔’이 다르다. 제각기 성격이 다르고 뚜렷한 논조를 띤다는 것은 피차의 정체성과 생존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fact) 보도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면, 둘 가운데 하나는 조롱거리가 되는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기사의 취사선택, 지면의 할애와 배정 따위에는 신문의 창간정신이나 편집방향과 선택권을 가진 편집자의 철학이 잠재해 있다. 또 하늘만이 아는 지면의 숨은 의도와 의제(agenda)를 따로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III.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서 비롯된 국정중단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의 5.9조기대선 결과가 주목된다. 난립한 후보들의 정치적 미래와 정치판의 이합집산이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할 수가 없다. 또 그 결과로 이어지는 총선이 어떤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대선결과로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불가피한 일이다. 따라서 내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그 의미가 매우 크고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근간이 되는 지방자치와 민주주의가 지방언론과 전문언론의 올바른 기능과 역할에 의해 한걸음 더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민주주의의 근간, 지방자치의 성패는 지역언론과 전문언론이 좌우한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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