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폈다. 4월 16일 일요일엔 봄날의 기운이 가득했다. 일요일마다 다니는 영어회화 모임에서 야외스터디 제안이 나왔다. 반팔 티에 셔츠 하나만 걸쳐 입은 팀원도, 오랜만에 꽃무늬 자켓을 입은 나도 좋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슬며시 봄이 왔다. 니트를 입고 시작했던 스터디였는데, 반팔티를 꺼내 입고 모여앉았다. 우리는 더듬더듬 영어 몇 문장 말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은, 흐르는 것 같지 않아도 어느새 그렇게 빨리 앞으로 달려가서 우리를 잡아당긴다.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으니 인형을 든 가족이 지나갔다. 카페에선 얼마 전 종영한 고등래퍼에서 발표한 곡이 흘러나왔다. 하얀 얼굴의 새빨간 입술을 가진 중고등학생 몇 명이 우리를 슬쩍 쳐다보고 길을 갔다. 아이들의 작은 핸드백 귀퉁이에는 노란리본이 달려있었다. 팀원의 필통 한쪽에서도 노란리본이 흔들렸다. 우린 이렇게 잘사는데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노란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포커스뉴스

가족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친구가 말했다. 꽃이 피면,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물들면, 봄 냄새가 나고, 여름의 후끈함이 다가오는 모든 순간마다 이제는 곁에 없는 가족이 생각난다고. 떠나지 않았으면 당신이 보았을 풍경들인데, 당신은 이곳에 없어서 더 이상 이걸 볼 수 없고, 그걸 깨달을 때마다 절망스럽다고. 친구의 말에 나는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재작년 4월 수업을 하던 강사님이 말했다. “길에서 담배를 피는데 고등학생 몇 명이 오더니 담배 좀 사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순간 어이가 없어서 한소리 하려는데 숨이 턱 막혀요. 그냥 교복을 봤는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서 그냥 한 보루 사서 쥐어줬어요. 담배 피고, 사고 쳐도, 혼나도 좋으니까 그냥 살아만 있어달라고. 갑자기 그런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강의를 듣던 모두 말문이 막혔다.

언제부턴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걸 보면 텁텁한 맛이 느껴질 정도로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찬 망망대해가 보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라일락이 하나하나 피어오른 것을 보고 사진을 찍다가 문득문득 멈칫한다. ‘곧 있으면 4월이네.’ ‘아, 4월이구나.’ 자꾸만 봄이 오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아무 것도 정리된 것이 없는 기분이고, 시커멓게 뒤엉켜있는 감정이 나의 손목과 발목을 휘감았다.

14년도 5월 어느 날에 갑자기 가슴한구석이 묵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잠수사가 시신을 인양하는데 아이가 선체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엄마한테 가자, 이제 엄마한테 가야지’라고 말하자 시신이 떠올랐다는 트위터의 한 줄을 읽었을 때였다. 유언비어일 수 있고, 시신이 어떤 곳에 걸려 있다가 그 순간 움직여지는 상황이었을 수 있다. 이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엄마의 모습이, 엄마와 가족한테 돌아가고 싶었을 당신들의 시간이 보였다. 그리고 연이어 중간고사를 공부하던 내 모습이,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모습이 겹쳐보였다.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간동안 나는 살아있었고, 누군가는 그 추운 바다에서 당신을 기다렸다. 당신은 그 바다에 있었구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고, 절망이고, 공포였다. 그 이후로도 한 번씩 그런 감정들에 짓눌려서 사는 것이 무거워졌다.

뭍으로 나온 세월호와 뻘로 뒤덮인 선체 내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포커스뉴스

세월호 3주기가 지났다. 영원히 가라앉아있을 것만 같았던 세월호가 뭍으로 나왔고, 매일매일 시커먼 뻘을 뱉어내고, 빠른 속도로 부식되고 있다. 세월호는 이제 물 밖에 있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품은 상처는 여전히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는 것 같다. 세월호 인양 소식에 맞춰 많은 TV프로그램이 방영됐다. 그 중에서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님의 인터뷰가 쉬이 잊히지 않았다.

더 많이 구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와서 고통스럽다고. 매일매일 죄책감 때문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생존자들도 목격자들도 자신들의 상처를 매듭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얘기였다. 4월이 올 때마다, 세월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가방과 파우치에서 흔들리는 노란리본을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왜’라는 말이 울렸다. 알 수가 없고 감당이 되지 않아서, 삶의 한복판에 칼자국이 생긴 것만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매일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나의 삶이 죄스럽지 않을까, 어떡해야 이 사건을 안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 3년이 지났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오른쪽 무릎아래에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화상자국이 있다. 어릴 적 오토바이를 만져보다가 배기통에 데인 상처다. 20여년이 지났는데도 화상자국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가 많이 작아져서 다른 사람이 보면 모를 정도이지만, 나는 무릎 아래를 볼 때마다 검정색 오토바이가 생각나고 지금도 오토바이가 있으면 근처로 다가가지 않는다. 내가 화상을 입은 그 사건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안개 가득한 회색 하늘과 시커먼 바다를 목격한 지금 이 시간의 사람들에게 세월호도 이럴 것이다. 잊은 것 같아도 다시 생각나고, 그 아픔을 매일 다시 느끼게 되는, 그 고통이 조금씩 작아지더라도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는 사건.

3년 전 거칠게 기울어졌던 세월호를 보고, 지금 목포항에 올라온 세월호를 보았다. 우리의 아픔은 여전하고,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세월호는 변해있었다. 반질반질하던 선체는 시커멓게 녹이 슬었고 선미부분은 종잇장처럼 구겨져있었다. 시간이 흘렀구나, 3년이 지났구나, 우리 모두 세월호의 시간과 함께 살아왔구나, 그렇게 조용조용 읊조렸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마음 한구석이 무겁지만 이제 조금 내 삶 속의 세월호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내 삶엔 4월 16일의 그날이라는 칼자국이 남았구나 하고. 3년 만에 정말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나의 삶의 짙은 자국으로, 이렇게 당신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