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깡통전세가 될까 걱정돼 ‘주택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료율을 내리고 보증한도를 확대하자 가입자가 한해 전보다 두배나 증가했다는 소식입니다. 전세보증금은 오르는 데,매매가는 그대로여서 깡통전세 우려가 커진 탓입니다. 

깡통전세란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80%가 넘어 집주인이 집담보대출의 이자를 연체할 경우 경매에 넘어가 전세보증금이 몽땅 날라가게 될 처지에 있는 전세를 이릅니다.

깡통은 깡+통의 합성어죠. ‘깡’은 ‘캔 맥주’‘캔 사이다’할 때의 캔(can)에서 왔다는 게 통설입니다.알루미늄이나 쇠붙이로 만든 속이 빈 밀폐용기(깡)와 여기에 해당하는 한자어 통(筒)이 합쳐졌습니다. 통조림 역사가 1900년대인 점을 고려하면 캔의 일본식 발음 ‘칸’이 ‘깡’으로 진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깡통전세에 앞서 ‘깡통주택’ ‘깡통계좌’란 표현도 한때 지상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깡통주택은 은행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빼면 한푼도 남을 게 없는 주택(아파트). 깡통계좌 역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했다가 주가가 곤두박질해 계좌 주식평가액이 빌린 돈에 못미쳐 ‘강제매매’ 대상이 된 빈털터리 계좌를 말합니다.

깡통전세든, 깡통주택이든, 깡통계좌든 있었던 것(전세금, 주택, 계좌의 돈)이 없어져 빈깡통처럼 ‘빈 것’이 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부산엔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부평깡통시장이 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거래되다가 베트남 전쟁때는 미군물자인 통조림이 많이 유통돼 깡통시장이란 이름까지 얻었다죠. 깡통이 통조림의 ‘별칭’으로도 쓰였던 겁니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스페어 깡’으로 불리는 통이 있습니다. 미군이 군용지프 뒤에 달고 다녔던 비상용 휘발유통(5갤런짜리). 여분(스페어)의 통(깡)이란 의미로 스페어깡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중고거래가 될 정도로 ‘인기품목’입니다.

©픽사베이

깡통이란 단어의 탄생에 한미일 3국이 자리하는 듯합니다.

‘깡통차다’(빈털터리가 돼 동냥아치가 된 신세)란 말도 동시대어죠. 먹고 살기 힘들어 깡통을 들고 동냥하던 이들이 많았던 시절에 생긴 말입니다. 실제 깡통에 구멍을 뚫고 줄을 매 허리춤에 차고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양아치란 표현도 이 즈음 생깁니다. 본래 6.25전쟁 직후에 생긴 전쟁고아들을 가리켰으나 이후 동냥+아치에서 ‘동’이 탈락해 냥아치>양아치로 굳어집니다.

전쟁고아들은 외국에 입양되기도 했지만 주로 동냥아치 패거리에 끼었습니다. 어린 애들은 구걸 신문팔이 구두닦이로, 나이 든 애들은 강도나 소매치기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양아치가 넝마를 줍는 ‘재건대’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62년 정부는 넝마주이들을 관할시청에 등록케 하고 지정된 복장과 명찰을 달고 지정구역에서 일하게 합니다. 근로재건대라는 이름으로 경찰의 관리감독을 받습니다. 깡통이나 쇠붙이 등 재활용 물건을 멜빵 대주머니에 주워담아 팔았습니다. 

양아치가 애초 동냥아치에서 비롯됐지만 재건대 의미가 녹아든 게 아닌가 합니다. 

양아치와 더불어 당대를 풍미한 ‘양’자 돌림의 단어들로 양갈보 양색시 양공주(서양 사람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양놈(서양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 양철(안팎에 주석을 입힌 얇은 철판), 양은 냄비(구리에 니켈과 아연을 섞어만든 냄비) 등도 있습니다. 양(洋)은 물론 서양을 뜻하죠. 

깡통, 양아치, 양놈, 양갈보, 양은냄비...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의 단면을 보여주는 속살같은 말들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