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외제차 바퀴의 기름 때를 벗겨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타이어가 이빨이라면 휠(wheel)은 잇몸인데 이 녀석은 태생적으로 흰색인지 회색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잇몸이 어찌나 튼튼한지 내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문질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무작정 거품이 일어나기만 빌며 스펀지로 좌우를 닦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스펀지에 구정물이 차오르면 내 왼발 곁에 둔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담가 스펀지를 목욕시켰다. 몸 구석구석에 기생하던 건더기를 끄집어냈고, 최대한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부드럽게 문질러주었다. 새벽시간이라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기에 때때로 양동이에 차오른 오물의 잔재를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것은 나에게 범죄도 아니었다.

그러다 바퀴만 닦아서는 일이 글렀다고 깨달을 때쯤 차체의 온몸에 거품을 쏟아내고, 양손에 극세사 걸레를 두르고 탈춤을 추듯 주변을 미친 듯이 돌았다. 땀이 흥건히 쏟아지고 입 안에 단내가 퍼져 귀신들린 듯한 내 얼굴을 누군가 본다면 광년이라 부를 것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라는 생각에 (사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최신 유행 댄스까지 가미하여 흥얼거리면 일순간 부르주아가 된 것은 아닌지 헛바람이 들 때도 있었다.

©픽사베이

한 달에 한 번은 차량 내부를 닦기도 했는데 그날은 몇 배나 힘이 들었다. 외부 세차의 목적이 단순히 외형의 회복이라면 내부세차는 내면의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내면 성장 또한 단기간 완성이 어렵듯이 차량내부 세차 또한 여간해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까지 신경 쓰는 것은 물론 값비싼 녀석의 피부에 조금이라도 흠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온 몸을 뒤틀며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발악한 이후 찾아오는 것은 평안함이었다. 알 수 없는 향긋한 향기가 차내에 둥둥 떠다니며 내 몸에 맞게 차량 시트가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기회를 준다면 쪽잠이라도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monodrama)같은 새벽 세차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내 몸 보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도로 위의 고독을 즐기며 질주했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한 탓인지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곤 했다. 골목 골목을 지나 슈퍼마켓 옆 원룸이 내 집인데 도무지 찾기 힘든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펼쳐진 길 앞에 길 잃은 나그네 신세였다. 눈 앞에 길이 있는데도 나의 길을 찾을 수 없는 느낌. 25살 청년이 겪어야 했던 고뇌이자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이 똑같이 직면하는 트라우마(trauma)가 아닐까.

아무리 애쓰며 노력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손 세차 일을 통해 작은 사회를 경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서 힘들어 하고, 혼자서 즐거워하는 동안 퇴근시간은 찾아오고 집으로 향하지만 나의 길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주변의 성공자들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고 청년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지만 절벽에서 겪는 아찔함의 몫은 온전히 청년 책임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라는 무서운 말 보다 하늘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면을 바라보면 눈 앞의 길만 보이지만 하늘을 보면 ‘내’가 보인다. 하늘을 보며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찾고,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세상만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동공으로 인식된 눈 앞의 가시물보다 하늘이라는 스크린에 다양한 상상물을 초대하여 한바탕 놀이를 하고 나면 오늘 하루가 정리되고, 내일 하루가 기다려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길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지름길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문에 뜻을 품고 여전히 대학원에서 맴돌고 있다. 아직도 진로를 찾지 못했냐며 돈 낭비 하지 말라고 가까운 친구들이 비수를 꽂지만 나는 그저 어른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화답한다.

“인생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정답을 찾아가는 생존게임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곡점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유유자적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공비행과 같다고”

애초부터 길은 없었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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