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9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10일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당직자 등과 포옹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정당이 먼저냐, 유권자가 먼저냐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가 끝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지지와 격려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를 멀리했던 청년과 여성들이 이번 선거로 정치적 목소리를 갖게 됐다”라는 발언은 지지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입장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이 분명 있었고, 소외된 이들의 정치 참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기에 큰 문제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하지만 정의당과 심상정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청년, 여성, 성소수자들이 본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대선 이전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심상정 돌풍’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소수당이라는 입지에도 노동과 인권 문제를 정치권에 끊임없이 제기하는 정의당의 모습은 배제와 혐오가 가득했던 정치권 내의 인권 문제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 그렇기에 심 후보의 지지자들은 ‘청년과 여성들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기성 정치권이 청년과 여성을 소외했던 것’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심 후보가 기성 정치권이 지니고 있던 문제를 반복하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심 후보도 이를 알기에 문제가 되었던 표현을 “무엇보다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어 왔던 청년과 여성들이 이번 선거로 정치적 목소리를 갖게 됐습니다”로 바로잡았다.

19대 대선 권역별 득표율 ©포커스뉴스

다양해진 유권자 요구와 정치지형 변화

이번 선거는 유달리 후보가 많았다. 사퇴한 후보를 제외하더라도 13명의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고, 5% 이상의 표를 받은 후보도 다섯명이나 됐다. 이 다섯명의 후보들은 이전처럼 선거를 앞두고 중도 하차하거나 단일화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다섯개의 정당, 다섯명의 후보 모두 각자의 정체성과 공약을 통해 다른 후보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고,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만으로 승부하려 하지 않았다.

당선 확률이 높지 않음을 알면서도 대선을 완주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유권자의 약 13%(약 420만 표)는 자신이 뽑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표를 던졌다. 또한 동성애가 TV 토론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었고 후보들은 이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펼쳤다. 후보자들의 발언을 두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국민들 요구와 기대가 진영 논리로 나눌 수 없는 인권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던 기존의 정치 프레임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그대로다. 헌법은 복수정당을 보장하고 있지만 단 한 번의 투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현재 선거제도에서 정당과 후보들은 당선이 유력한 후보를 중심으로 모인다. 단일화의 유혹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은 단일화가 되면 진영을 보고 표를 던지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스스로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에게 표를 주면, 내가 원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될까 봐 신념과 타협하고 유력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커스뉴스

민주주의, 제도와 의식이 함께 가야

이번 대선은 다자구도가 유지되어 이전 대선에 비해 유권자들의 다양한 표심을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나면 각 정당들은 양자구도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의석수가 많은 정당일수록 국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신을 지키며 소수정당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다른 정당들이 합당을 해서 거대 정당이 탄생하면 법안 발의나 개정에서 아무 힘도 못 쓰는 식물정당이 되어버린다.

이제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좋은 정책과 공약을 내고도 정치적 세력이 약하거나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유권자들에게 외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차 투표의 득표율이 당선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재투표를 실시하는 결선투표제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유권자들은 사표 걱정 없이 신념에 따라 투표할 수 있으며 사실상 양당제로 유지되던 한국의 정치구조도 소수당들이 신념을 펼칠 수 있게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의 다양성만이 소외되어 왔던 청년과 여성,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와 현실에 반영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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