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조선업황에 대해 제대로 된 진단이 있었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 비판에도 아랑곳않고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1년 반새 10조9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했던 국민연금마저 당국의 '끈질긴 공세’에 손들고 말았습니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회사채) 재조정으로 2682억원의 손실을 떠앉게 됐습니다.

대우조선의 급한 불은 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연(內煙) 중입니다. 당국 의도대로 대우조선이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지 불확실합니다. 회생의 대전제인 업황개선이 따라주지 않는 한 또 다시 위기는 닥칠 것입니다. 대규모 공적자금도 지금으로선 응급수혈일뿐입니다.

조선업 위기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한 근로자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공적자금 투입 > 구조조정 > 업황 악화 > 자금지원의 악순환을 그려 온 대우조선의 궤적은 성동조선을 꼭 닮아가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채권은행이 졸지에 대주주가 돼 자금투입이 지속된 점부터 그렇습니다. 부실 조선사에 대한 자금투입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해에만 각 3조원과 1조원대 손실을 냈습니다.

대규모 부실의 원인(遠因)은 인사난맥입니다. 친박인사였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스스로 “세금을 탕진한 대우조선, STX 구조조정의 실패가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 친박실세의 관치 때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자회사 인사에 ‘청와대와 금융당국, 산은의 몫이 각 3분의 1’이라고 구체적 수치까지 밝혔습니다. 전문인력으로 채워도 모자랄 판에 비전문 낙하산 경영진이 부실을 키웠던 겁니다. 검찰은 최근  MB정부 실세였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고 비리를 눈감아줬다는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대우조선과 성동조선의 분식회계와 적자수주는 ‘관치 결과물’이란 점에서도 같습니다. 대우조선에서만 2012년부터 2014년까지 5조7000억원의 회계부정(분식회계)이 있었습니다. 수은 경영진은 성동조선의 적자수주(덤핑수주)를 방치해 부실을 키운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습니다.

회생을 위한 채무조정이 제대로 되려면 조선업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 회사 모두 업황에 대한 전문진단없이 회계법인의 경영진단과 실사에 의존했습니다. 혈세투입 방침이 결정된 뒤에야 부실 추산액이 잘못됐다는 등 뒷북성 목소리(산업자원부)가 나온 게 고작입니다. 적어도 산업정책 주무부서라면 조선업에 대해 분명한 밑그림과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본사 모습 ©포커스뉴스

성동조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좌초위기에 몰립니다.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 돌입 직전 채권자들과 자율협약을 체결, 2010년부터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대규모 자금지원과 구조조정에도 불구, 재차 위기가 왔다는 건 애초 (업황)진단이 잘못됐다는 반증입니다. 급기야 수은도 성동조선에 더 이상 지원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독자생존 외엔 이제 길이 없습니다.

성동조선에서 보듯 조선업황 전망은 여전히, 그리고 매우 불투명합니다. 진통 끝에 사채권자와 채무재조정이 끝난 대우조선 역시 2019~2020년엔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반짝이익이 날지 몰라도 상선을 중심으로 수주가 줄면서 매출이 올 추정치의 절반 아래로 떨어져 또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비전문가 집단인 회계법인조차 이런 전망을 내놓는 상황. 성동조선이 대우조선의 데자뷰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씽크탱크 중심의 전문가 집단이 진단에 나설 것을 권합니다. 정치한 처방이 가능하도록… 인사 난맥에 ‘엉터리 진단’이 지속되는 한 위기는 언제든 재연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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