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세상이 바뀌었다. 엊그제까지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짐을 싸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세를 얻어 귀하신 몸이 되고 있다. 힘을 얻은 이들에게는 밀물처럼 사람이 모여들고 뒤꼍으로 물러나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갈 터이다. 바야흐로 세월과 권력, 인생의 무상함이 저리게 느껴지는 때이다.

무릇 높은 데서 떨어질수록 더 아프고 충격이 큰 법이다.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서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문득 아웃사이더로 튕겨져 나왔을 때의 절망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처량하고 비참함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에 그렇게도 많던 사람들이 어느새 곁을 떠나가는 배신감과 고독감이라고 한다. 상황과 처지에 관계없이 그래도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 듯싶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져서인지, 전에는 권력을 잃은 주군을 끝까지 섬기던 의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도무지 그런 사람 찾기가 힘들다. 권력의 구조가 옮겨가면 부나방처럼 이를 좇는 사람들로 시장 터처럼 북적거린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은 없다. 지금부터 대략 2, 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에도 이미 이것은, 사람 사는 곳의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맹상군과 식객을 나타낸 그림 ©네이버 중국인물사전

生者必有死 物之必至也 
富貴多士貧賤寡友 事之固然也 
살아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이 반드시 이르는 바이고,
부귀하면 선비가 많고 빈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매사가 반드시 그렇게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는 전국시대 제나라 책사 풍환이 그가 모시던 맹상군에게 한 얘기이다. 그는 전국 사군자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맹상군의 식객으로 사기(史記) 맹상군 열전의 후반부에 등장하고, 전국책(戰國策)에는 풍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다. 전국시대는 국가의 생존을 건 처절한 싸움이 200여 년간 계속됐던 시대이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권력의 부침이 하루를 멀다하고 이뤄져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극에 달했다. 권력무상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풍환과 맹상군의 일화는 알려져 있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풍환이 맹상군의 식객으로 들어가 서로를 탐색하는 장면은 나중에 맹상군의 곁을 홀로 지키는 풍환의 의리를 생각할 때 자못 드라마틱하다. 풍환은 3000명이 넘는 식객들 틈에 보잘 것 없는 긴 칼 한 자루를 들고 짚신을 신은 채 거지 몰골로 맹상군을 찾아간다. 그런 그를 맹상군은 허름한 숙소에 머물게 하고 수하를 시켜 그의 동태를 살피게 한다. 반찬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리자 생선이 나오는 곳으로 옮겨준다. 나들이할 수레가 없다고 불평하자 수레를 탈 수 있는 고급 숙소를 마련해 준다. 집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집을 마련해 주고 노모를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맹상군은 그 또한 해결해 준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 주고 알아주었어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맹상군의 명성이 높아지자 위협을 느꼈던 제나라 왕이 그를 내쫓는다. 그러자 그의 마당에서 북적거리던 식객들도 하나같이 빠져나갔다. 모두 떠나간 맹상군의 주위에 오직 풍환이 남아 맹상군을 지켰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그는 맹상군을 다시 재상으로 복귀시켜, 초라한 몰골의 자신을 상객으로 예우한 맹상군의 은혜에 보답하게 된다. 맹상군이 다시 권좌에 오르자 떠나갔던 빈객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그러자 어려울 때 그를 떠나갔던 자들에게 한을 품고 있던 맹상군에게 풍환이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아침시장에는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에는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저녁시장에는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처럼 세상사 모든 일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처럼 영원한 권력과 부귀는 없다. 우리는 크던 작던 권력이 주는 달콤함과 권력에서 물러난 뒤의 쓴 맛을 한 번쯤은 겪었고 또 겪게 될 것이다. 권력에서 멀어졌다고 좌절해 할 필요도 없고 주변의 사람들이 멀어졌다고 배신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저녁시장을 싫어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세태의 변화에 상관없이 꿋꿋하게 의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더 자주 보고 싶다.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