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으로 보는 금융경제]

1980년대 중반, 캐나다 대사관 만찬에 참석했을 때였다. 본국의 장관급 인사 방한을 기념해 마련한 만찬에서 만난 캐나다 정부측 과장급 인사들은 명함을 주면서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 일은 얼마 전까지 여러 명이 맡았었습니다.” 공공부문 개혁으로 종래엔 두세 명이 맡았던 일을 혼자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민간부문보다 떨어지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국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관공서나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줄여 생산성을 높여보려는 노력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5월 국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었던 성과연봉제 도입 바람도 이러한 시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25일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원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성과연봉제는 2010년 상반기부터 정부가 대표적인 공기업 개혁과제로 꼽고 추진해오던 일이었다. 그동안 간부급에만 적용해오던 것을 지난해 5월 마감시한을 주고 그 안에 전직원에게 확대 적용하지 못하면 CEO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조직 전체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공공기관 대표들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대표들은 노조와 벅찬 씨름을 하면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6년 5월 5일자 신문엔 노조와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임기를 절반이나 남겨두고 사의를 표명한 공기업 사장 얘기도 실렸다.

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에서는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을 들어 오랫동안 극구 반대해왔다. 공공기관 업무라는 게 영업 위주의 민간기업 업무와 달리 개개인의 성과를 따로 측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과에 치중하다 보면 공공성을 해치고 장기 성과보다 수익 위주의 단기 성과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성과 측정의 투명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만큼 악용될 가능성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도 반대의 이유였다.

공공부문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성과연봉제의 근간인 평가방법이나 투명성 등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런데도 성과연봉제가 비효율성 해소 등 공공부문의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할 것처럼 밀어붙이다가 정권이 바뀌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물론 어떤 평가도 완벽할 순 없다. 평가의 틀을 아무리 꼼꼼하게 짜도 빠져나갈 방도를 마련하는 이들이 있는 까닭이다. 국내 학계에 비슷비슷한 이름의 학회가 많은 건 평가제도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학회마다 발간하는 학회지는 교수 평가의 기준인 연구논문 발표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규모나 내용 면에서 차이가 큰 학회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분야에 상관없이 지역학회를 적당히 전국학회로 만든 다음 학회지를 발행해 논문수 계산에 포함되도록 하는 일이 흔하다는 얘기다. 기존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힘든 교수는 물론 충분히 발표할 수 있는 교수조차 박사학위를 준 제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느라 지역학회에 가입함으로서 지역학회가 전국학회가 될 수 있도록 거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선 교수를 구글학자와 네이버학자로 나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와 국내학술지에만 논문을 발표하고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학자를 나눠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평가제도에 허점이 많다고 해도 선의로 설계된 평가는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가 많다. 민간부문의 경우 기업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평가방식을 시도한다. 공공부문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개별 기관 및 기업의 특성을 살린 평가의 적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연구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개혁은 무늬만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거꾸로 공공성이나 신뢰성을 빌미로 평가를 통한 점진적 개선을 거부하면 통치자가 아닌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무작정 밀어붙이는 측도, 공공성을 내세워 반대를 일삼는 측도 지나치면 실익과 명분 모두 잃을지 모른다.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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