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보다]

영국을 대표하는 노장감독 켄 로치의 최근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이하 다니엘)는 40년 경력의 목수이다. 일하던 도중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그는 당분간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질병수당을 신청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암전 속에서 수당 심사 담당자와 다니엘의 대화가 들리는데, 담당자는 심장병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계속한다. 혼자서 50미터 이상 걸을 수 있는지, 팔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있는지 등 중증 치매 환자에게 어울릴 법한 질문들에 다니엘은 제발 내 심장에 대해서 물어봐달라고 분개하지만 담당자는 성실하게 답변하지 않으면 수당 지급이 곤란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네이버영화

결국 질병수당 심사에서 탈락한 다니엘은 항고를 준비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질병수당과 별개로 실업수당을 신청하는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 활동을 계속 해야 한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그는 직접 쓴 이력서를 들고 공사장과 공장을 찾아다니며 구직활동을 한다. 어느 날 한 공장에서 출근해도 좋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다니엘은 죄송하지만 심장이 안 좋아 지금은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면 왜 이력서를 냈냐며 묻는 사장에게 다니엘은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사장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고 다니엘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실업수당 담당자는 다니엘에게 구직 활동 증명 서류를 요구하지만, 직접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린 다니엘에게 증빙 자료가 있을 리 없다. 다니엘의 자필 이력서를 본 담당자는 이력서는 컴퓨터로 작성해야 된다며 이런 식으로 구직 활동에 불성실하면 실업수당 지급이 중단된다고 경고한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과연 지금의 복지 제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다니엘은 현재 심장 발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질병수당 심사에서 탈락하고 어쩔 수 없이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구직 활동에 나서야 한다. 정작 취업이 되더라도 그의 몸은 당장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구직활동은 하지만 정작 취업이 되면 안 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현 제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복지 대상자 중심이 아닌 행정적 편의만을 강조한 복지제도는 취업이 되어도 일을 할 수 없는 다니엘 같은 사람들을 만든다. 물론 어떤 제도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규정과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제도들이 대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보다 어떤 대상자를 걸러내야 하는지, 규제와 제한에 더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교묘한 방법으로 수당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 대한 제재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그로 인해 지원이 시급한 사람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 어디에나 있는 불법을 저지르는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복지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힘없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시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복지 지원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더 게을러지고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복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다.

©플리커

최근 논의되는 기본소득 제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1인당 월 25만원 정도를 준다고 해도 이 금액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본 소득이 주어진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두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병이나 실직 등 크고 작은 위기 상황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지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또한 지금의 복지제도는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의 사람들에게만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하지만 기본 소득 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정 금액이 지원되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부조리한 일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다니엘은 결국 실업수당을 포기하고 질병수당을 다시 신청하기로 한다. 담당자는 질병수당 신청은 시간과 절차가 많이 걸리고 혹시라도 또 거절될 수 있으니 실업수당도 같이 신청하라고 한다. 그러자 다니엘은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며 담당자의 제안을 거절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을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며 기본소득을 공짜 복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복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이다. 주변에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일하지 않아도 저절로 재산이 늘어나는 사람도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어 출발선이 다른 경우도 많다. 다니엘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엄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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