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픽사베이

흔들리는 지하철.

출근길 노동자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앉은 사람도 서 있는 사람도 온화한 기색은 없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인 듯한. 그래도 개중에는 이어폰을 휘두르고 네모난 상자 속 움직임을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그의 하루에 신의 가호가 있길.

멀리서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분명 둔탁한 지하철의 쇳소리는 아니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오시며 좌중을 압도하는 호소를 하고 있다. 한 손 가득 움켜쥔 껌을 권하는 모습이 마냥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몸짓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여유가 묻어났고, 한 사람에게 두 번 권하는 법이 없었다. 지하철 방송에서는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방송이 흘러나올지언정 할머니는 묵묵히 지하철 저편을 향하여 완주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했다. 내 옆을 지나갈 때에도 앞에 앉아있는 넥타이 멘 청년의 숨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할머니의 호소가 청년의 숨소리를 타고 내 귀로 침투했다.

‘하나 사주세요’

사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고, 지폐가 없었고, 용기가 없었다. 할머니가 다른 칸으로 옮겨가는 동안 내 마음은 침울해졌다. 지하철은 계속해서 흔들렸고, 내 마음은 종잡을 수 없었다. 내가 타인을 관찰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동안 그들은 날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불쌍하게만 보이지 않았길 간절히 바래본다.

지하철을 나서며 반듯한 얼굴의 가면을 착용했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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