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구리역 앞 빕스가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들락거렸으니 적어도 십 년은 더 된 매장이었다. 어느 날 거대한 천막이 철근과 더불어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공사장 인부는 흙먼지 날리지 않게 계속해서 물을 뿌려댔다. 포크레인은 부서진 콘크리트들을 부지런히 쓸어담았다. 그게 4월과 5월 사이였다. 지금은 빨강색과 하얀색이 섞인 테이프가 건물 영역을 빙 둘러 표시하고 사람들이 오가던 매장은 그저 평평한 흙으로 변했다.

솔직히 말해서 매장 음식은 형편없었다. 만원만 받는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간판이 내려가고, Closed가 하루종일 걸려있는 출입문을 볼 때는 더 좋은 음식점이 들어오겠다 싶었다. 그런데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어딘가 뻥 뚫려버린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픽사베이

가족 외식을 하고,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 곳이었다. 누나 친구들과 간 적도 있고, 내기를 걸고 간 곳이기도 했다. 등하교길에 자연히 눈에 띄던 건물이 보였던 이제는 완전히 공터가 되어버려서, 공사장 테이프를 지나칠 때면 새삼스럽게 서러워졌다.

구리역에서 우리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에는 오래된 상가들이 많다. 90년대를 방불케하는 ‘코팅/복사’가 큼지막하게 써진 문구점 두 개, 아직도 피카츄와 1000원짜리 닭꼬치를 팔고 있는 옛날 분식집. 이발소 조명이 돌아가도 이상해보일 것 같지 않은 미용실, 사제 옷을 따로 파는 옷가게 등. 한동안 서울에 살다가 다시 구리로 돌아갔을 때에도, 남색 마이를 입던 중학교 때의 시선과 별 차이가 없었던 길목이 내게는 너무 익숙했나보다. 그 익숙함 사이에, 생각보다 젊은 건물이던 빕스가 슬쩍 끼어있었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 나는 옛날부터 그려왔던 풍경에 그 건물을 끼워맞출 수 있을까. 4층 규모가 아닌 8~9층의 높다란 건물이 들어선다면, 나는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언젠가 문구점도 분식집도 사라져서, 불량식품 파는 할머니와 단짠단짠 떡꼬치를 건네는 이모님까지 볼 수 없게 되면 내 풍경 속에는 몇 개의 구멍이 생길까. 추억이라는 것은 내가 아무리 간직하려 해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일까. 언젠가 구멍이 벌집처럼 숭숭 난 뒤에, 나도 내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저 무너진 건물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어디로 사라지는걸까. 구식 난로를 피우는 할아버지와 미용실에서 분주히 가위를 놀리던 아줌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픽사베이

우리가 사는 현재는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오래된 것들이 빠르게 교체된다. 옛것이 사라지고, 낡은 것들이 무너지고, 촌스러운 것은 세련된 것으로 바뀌어간다. 문화재가 아닌 이상 노후 건물이 남아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청계천의 헌책방들도, 종로의 광장시장도, 학교 앞 문구점과 이제는 드물게 남은 대여점도, 겨울밤 모퉁이 너머로 피어오르는 포장마자의 수증기도, 엿가위를 짤랑거리며 찹쌀떡을 팔던 떡장수까지.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가끔씩, 사라질 준비를 하는 오래된 것들에게 ‘그래도’를 건네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게 꼰대가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그 옛날에 살았다. 당신들이 품은 나의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큰 구멍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리움이 그 빈 공간에 머물러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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