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과 이슈]

2015년 12월15일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공판에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포커스뉴스

CJ E&M이 고(故) 이한빛 PD의 자살과 관련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재발방지도 약속했습니다.

이례적입니다. 이례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그동안 CJ가 그의 자살이 회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입니다. CJ는 고 이 PD의 성격과 근무태만의 문제이지, 이례적인 수준의 따돌림이나 인권침해는 없었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CJ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까지 약속한 겁니다. 다소 의아스러운 까닭입니다.

이 PD는 2016년 1월 CJ E&M PD로 입사해 4월 드라마 Tvn‘혼술남녀’ 제작에 조연출로 참여합니다. 의상 소품 식사 촬영정산이 그의 주 업무였고 ‘혼술남녀’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그해 10월 21일 실종돼 26일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습니다.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 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그가 남겼다는 유서의 일부입니다. 유족 측은 열악한 제작환경과 ‘혼술남녀’ 제작진의 폭언에 시달리다 고인이 자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CJ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 이한빛 PD가 SNS에 올린 유서 일부.

고 이 PD의 친동생은 형이 세상을 떠난 뒤 형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뒤져 55일 동안 형이 쉰 날은 이틀정도였다며 SNS에 열악한 노동환경과 군대식 제작문화에 형이 시달렸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이 기폭제가 돼 시민단체 중심으로 대책위가 구성됐습니다. 대책위는 “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돼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가 그의 죽음을 가져왔다”며 “CJ와 몇차례 간담회를 가졌지만 제대로 된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사과조차 않는 것이 CJ의 현실”이라며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냉담하던 CJ가 사과와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나선 겁니다. CJ의 입장선회는 이재현 회장의 경영복귀와 무관치 않아보입니다. 4년 만에 복귀한 그는 일·가정 양립지원과 유연한 근무환경, 글로벌 역량 강화를 세 축으로 하는 기업문화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에 응답했습니다. ‘하루빨리 휠체어에서 내려 지팡이없이 건강하게 걷기 위해서도’ 걸림돌이 될 만한 사안을 속히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합니다.

사실 CJ그룹은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박근혜 최순실 사태로 한동안 시끄러웠고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 촬영사건에 CJ제일제당 부장 출신이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CJ그룹이 배후세력으로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수사결과 CJ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러던 차에 고 이 PD사건까지 터진 겁니다.

악화돼가는 여론과 새 정부의 재벌개혁 분위기 등등을 고려해 어쨌든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인천공항공사를 시작으로 롯데 SK네트웍스 등 재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습니다.

CJ의 사과나 재계의 정규직 전환발표들이 말의 성찬이나 내실없는 일과성 조치로 끝나지 않고진정성있게 접근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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