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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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참새>

동물원의 곰은 팔자가 상팔자입니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사람들이 때맞추어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다. 더운 여름철이면 시원한 물 속에 들어가 수영도 즐길 수 있답니다. 곰이 들어 있는 울 밖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이라고 곰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가을날 낙엽지듯 내려와 곰의 먹이통 위에 앉았습니다. 곰이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배가 고프냐?”
참새가 대답했습니다.
“네”
“거기 내가 먹다 흘린 게 있으니 실컷 먹으렴.”

참새가 열심히 곰의 먹이를 쪼아 먹습니다. 다시 곰이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넌 집이 없니? 사람들이 먹을 걸 가져다 주지 않아?”
“네, 우리는 울타리가 없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답니다.”
“쯧쯧, 안 됐구나.”
곰이 혀를 차면서 말을 계속했습니다.
“하긴, 누가 네 그 작은 몸뚱이에게 신경을 써 주겠니?”

참새는 그 동안에도 열심히 먹이를 먹었습니다.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고마워요, 곰 아저씨.”
참새는 인사를 하고 포르르 날아올랐습니다.
“오냐, 잘 가거라, 불쌍한 참새야. 배가 고프거든 또 오너라.”

참새는 곰의 울을 벗어나 푸른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날아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이 없는 대신 우리는 하늘이 있답니다.”

만일 곰과 참새 중 하나로 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곰을 택할 것이다. 곰과 참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 속 곰은 마냥 게을러 보인다. 반복되는 생활에 안주한 모습은 소크라테스의 “배부른 돼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곰의 말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집도, 먹이도 있는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게 과연 나쁠까.

현대인들도 보장된 삶 속 안전함, 안정감을 사랑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가서 취업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함이다. 집을 마련하고 차를 사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며 부지런히 저축을 한다. 이야기 속 곰은 모든 것이 주어졌으니 그럴 필요없어 속 편하다.

반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참새가 자유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참새는 죽을 힘을 다해 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힘은 쉼 없는 날갯짓에서 비롯된다. 자유와 맞바꾼 위험수당이라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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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 오늘은 굶고 다른 내일은 포식하는 삶이 아니라 안정된 삶을 원한다. 갇힌 곰은 이따금 답답하겠지만 탈출을 감행하면 그만이다. 2010년 12월 탈출했던 ‘말레이 곰’처럼 말이다. 대다수는 말레이 곰의 탈출기를 고난과 시련이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지겨운 삶 속 본인이 선택한 일탈로 보인다. 방황 이후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부지런한 참새에게도 집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둥지에도 지붕이 있을까 싶다.

사실 참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살아온 가정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새는 우리 아빠와 매우 닮아 있다. 과거 아빠는 정식 교수가 되기 위해 시간강사로 일했다. 본업과 대학원 공부, 외래강의까지 해내는 아빠의 모습은 쉴새 없이 움직이는 참새와 유사했다. 지금은 좋은 학교에 정식 교수로 학과장도 하며 곰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참새의 고된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안타까운 점이 많다. 아빠 또한 과거의 삶보다 현재의 삶에 더 만족하고 있다. 현재를 위해 견뎌낸 어려움을 알기에 나는 곰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야기 속 곰처럼 거만해지지 않길 바란다. 하루를 사는데 열심인 모두가 참새처럼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곰이 되었으면 한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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