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 사람]

©픽사베이

신호대기에 걸렸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
하루는 무거운 짐과 같았다.
아직 온전한 퇴근조차 하지 못한 내가 출근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세어본다.
여섯 시간 이십칠 분.
한숨 같은 분노, 체념과도 같은 한숨.
나는 아직 견딜 수 있다.

이 사거리 건너편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동물병원이 있었다.
로디가 죽고 나서는 어떻게든 그 병원을 보지 않으려 멀리 돌아다녔었다.
그러다 내가 잊었나? 아니면 그 동물병원이 이사 간 것이 먼저였나?

눈앞이 환하여졌다.
늦은 밤,
쓸쓸하고 어두운 자동차 운전석에 관객처럼 앉아,
한때는 찬란했던 너의 여름을 본다.

영화처럼,
건너편 사거리 횡단보도,
너는 로디를 끌어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짙은 금발의 코카스파니엘, 너를 안고 뛴다.
혀를 헤헤 거리고 있던 너는 웃고 있었던가.

한참 수줍게 좋아하던 선배가 눈이 부시도록 빛나던 여름 한낮에 전화를 했다.
그는 ‘우연하게도’ 일산까지 오게 되었으며 ‘우연하게도’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우연하게’를 나는 몇 번이나 따라 발음해 보았다.

마침 동물병원에 가야 하는 로디를 데리고,
바로 그 사거리 건너, 횡단보도 앞에 있는 동물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나의 개’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 마음의 ‘나의 그’에게.

파란 하늘에 푹신푹신한 흰 구름 아홉 개를 쌓아올렸다.
우리는 구름 위를 신나게 뛰었다.

로디를 안고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흐르는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병원 앞에서 기다리던 그가 차에서 내렸다.
그 얼굴이 빨갛게 웃고 있었다.
나의 얼굴도,
로디, 너의 꼬리도 웃고 있었다.

여름이 사라지고, 빛도 사라졌다.
쓸쓸한 정적과 어두운 계절.
관객은 집으로, 차가운 책상으로 돌아간다.

꿈과 같았던 그때는.
네가 여름처럼 웃던 그때는.
꿈에서라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차라리 잠들어 버리고 싶은 꿈.

로디는 15kg.
로디는 건강했고 나는 스물 하나였다.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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