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보다]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군대 내 동성애가 군 전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그 후보가 말한 동성애의 정확한 의미와 범위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그렇다면 군대 내 이성애는 괜찮은가? 이성애가 군인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휴가를 다녀온 사병의 표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이유를 알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연인과의 문제였다. 심각한 경우 병 차원에서 윗선에 보고되고 이후 간부의 면담과 관리가 이루어진다. 탈영이나 자해, 총기사고 등의 일탈 행위를 미리 방지하려는 것이다. 해당 사병은 그 기간 동안 훈련이나 작업도 최대한 열외 되고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상담도 받게 된다. 즉 다른 병사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 혜택을 받는 셈이다. 그동안 그 사병은 자신의 전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므로 그 부대의 전력 역시 약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연인의 성별은 반드시 여성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동성애자 보다는 이성애자 수가 더 많으니 이 경우 이성애야 말로 군 전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면 군 전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이성애를 전면 금지하고, 모든 병사들에게 연애를 금지 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강력한 군법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서 이성애를 동성애로 바꾸면 묘하게도 서글픈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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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성애자인 육군 A대위가 영외에서 자신의 파트너와 합의된 성관계를 가졌고 이로 인해 결국 실형을 선고 받았다.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군 형법 92조 6항의 적용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은 A대위의 사적인 성관계를 어떻게 군 당국이 알게 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 인권 관련 NGO인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어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센터는 “성관계의 물적 증거 없이 동성애자 데이트 애플리케이션 등에 잠입해 동성애자 군인을 식별한 뒤 수사 대상을 선정했다”며 “성 정체성만으로 수사를 개시한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자 반인권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성관계시 성향, 체위, 콘돔 사용 여부, 첫 경험 시기, 성 정체성 인지 시점 등 추행죄 구성요건과 무관한 성희롱성 질문을 해 수사 대상자들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동성애자를 색출하라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함정수사 또는 불법 사찰을 통해 동성애자 군인을 가려낸 뒤, 모욕적인 조사를 거쳐 재판에 넘겼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가지거나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동성애와 동성 간 성추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동성애와 동성 간 성추행은 엄연히 다르다. 동성 간 성추행은 엄연히 불법이고 엄벌에 처해야 하지만,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이고 사랑이다. 이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금지 시킬 수 있는가? 상대를 향한 애정 어린 눈빛, 서로의 손끝을 스치는 그 아슬아슬하고 아련한 감정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철천지원수 집안 사이에서도 피어나는 그 감정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A대위는 여느 군인과 마찬가지로 휴가를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둘만의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구속됐고 실형까지 선고 받았다. A대위에게 실형 판결이 내린지 며칠 뒤, 한 여군이 자신의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무수히 발생하는 군대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유달리 관대한 군이 유독 동성애자에게만 가혹한 것은 남자다움을 중요시하는 군대 사회에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군을 상대로 한 남성 간부의 성 범죄에 대해서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여군에게 몸가짐을 조심하고 애초에 그런 여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책망해서 논란이 된 경우도 많았다.

군 형법 92조 6항에는 군인, 사관생도, 사관 및 부사관 후보생에 대하여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에서는 항문 성교와 추행이 동급으로 취급된다. 서로의 합의에 의하든, 그렇지 않든, 항문 성교 자체가 금지 된다. 그리고 항문 성교는 동성 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항문 성교는 개개인의 성적 취향에 따라 이성 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이성애자인 군인이 항문 성교를 하면 그것도 92조 6항에 해당되는 사례가 될 수 있는가?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이 조항은 없어져야 한다.

2013년 뉴질랜드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날, 보수당 의원 모리스 윌리암슨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결정은 이 법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내려진 날로 기억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도 해는 떠오르고, 오늘 말 안 듣는 아이는 내일도 여전히 부모님의 속을 썩일 테지요 ”

이성애자 군인에게는 휴가 때 군용 콘돔도 지급된다고 한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사랑을 감시당하고 실형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은 말도 안된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사랑이 서로 다른 시간 속을 살게 되는 이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내일 해가 떠오르지 않아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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