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5월 어느 날, D구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4개월 계약직 알바 A씨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알바의 상사인 지도계(선거법 위반 사항을 감시·단속하는 부서)의 계장, 주임은 구내의 큰 행사를 감시하러 사무실을 비운 상태이다. 계약직 A에게 주어진 권한은 ‘전화받기, 메모하기’이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계장과 주임은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항상 일반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공무원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저 일반인들은 공무원법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즉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A는 까라면 까야하고 아무런 권한도 쥘 수 없는 소모품이었다. 그는 학생 시절 서비스직 알바를 하며 배운 낭랑한 톤으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D구 선관위 A입니다.

발신자는 D구청 교통행정과 주임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주임은 민원인의 항의 전화 때문에 선관위에 질의를 한다. D구청의 주임은 차량 번호를 불러주며, 이 차량이 선관위에 신고된 차량인지 확인해달라고 한다. 계약직 A는 얼마 전 지속적으로 받았던 민원을 떠올렸다. “우리는 선거운동을 한 건데 과태료를 물게 하면 어떡합니까? 이런 건 기관끼리 상의가 안 되는 부분입니까?” 선관위의 주임은 과태료는 우리 쪽에서 다루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구청으로 연락을 해보라면서 민원인에게 구청을 안내했었다. 그 민원인인가 보다.

A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확인해드리겠다며 차량 번호를 받아 적는다. 확인만 해주면 되는가, 물어보니 D구청의 주임은 확인 후 공문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답을 한다. A는 ‘공문도 필요하구나’라며 메모를 한다. 그는 공문을 작성해본 적이 없지만, 기안을 올리고 결재를 받으면 되는 절차적인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A는 ‘공문’이라는 것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행사 감시를 나갔던 주임이 사무실로 돌아오고 A는 메모의 내용을 주임에게 알린다. 주임이 민원인에게 안내까지 했던 일이기에 전달하는 데에 별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임의 반응은 A의 예상을 깨뜨린다. ‘이게 무슨 내용이야? 나는 이해가 안 되네. 그리고 무슨 공문을 달래?’ 주임은 기분이 상한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구청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A는 주임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 특별할 것이 없는 전화질의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선관위 주임: 네, 주임님 안녕하세요. D구 선관위입니다. 저희 쪽에 연락 주셨다구요?
D구청 주임: (상황을 다시 설명)
선관위 주임: 네, 메모된 거 전달 받았습니다. 저희 쪽에 신고 된 Y당 차량이네요.
구청직원A: (알았다고 하며, 공문을 요청함.)
선관위 주임: 네? 공문이요?
D구청 주임: (다시 한 번 공문을 요청함.)
선관위 주임: 아니, 주임님 생각을 해보세요. 주임님도 공무원이시죠? 공무원 맞죠? 지금 이렇게 구두로 문의하시고 공문을 보내달라니요.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 주임님이랑 제가 같은 기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기관 대 기관의 일인데, 이렇게 전화해놓고 공문으로 답을 하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무슨 동네 구멍가게끼리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D구청 주임: (조금 기분이 언짢음)
선관위 주임: 주임님, 민원인한테 받은 감정을 저희한테 풀면 어떡하자는 거죠? 이렇게 구두로 질의하셨으면 저희도 구두로 답변드릴 수밖에 없어요. 공문으로 답을 받고 싶으면 공문을 보내시던가요. 절차를 지키셔야죠. 저희가 왜 먼저 공문을 보내드려야 하나요?

전화를 끊고 선관위 주임은 구청 주임에 대해 일처리를 모르는 직원이며 같은 공무원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뒷담화를 했다. 일반인 A는 기분이 얼떨떨했다. 무슨 큰 이유가 있어서 공문을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선관위 주임은 구청 주임에게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누구하나도 물러나지 않을 싸움이었다. 구청 주임이 먼저 공문을 보낼 것 같지도 않고, 선관위 주임도 곱게 공문으로 답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 싸움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 민원인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저희 쪽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절차대로 따라주세요” A는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지난 3년 동안 기간제 교사로 있었던 두 선생님이 순직으로 인정되었다. ‘기간제교사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근로자이다.’라는 인사혁신처의 반려사유가 대통령의 지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 뉴스를 보면서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안 되는 일은 없고, 되게끔 만들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은 일반 기업체의 사원과는 다른 입장에 있는 직업이다. 나랏일을 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고 도와주듯, 그들도 국민과 국가를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부터 우리나라는 문제가 많았다. 완장 하나 차면 목이 시멘트 기둥보다 더 빳빳해져서 코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공무원은 국민을 돕고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이야기 듣는 사람들인데, 반대로 국민 위에 서고 본인들을 섬기길 바랐다.

A가 경험한 극소수의 공무원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공무원 목은 시멘트 기둥보다 딴딴한 것 같다.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우리 기관이 너희 기관보다 힘이 더 세다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공무원 말고, 기다리고 있는 민원인을 생각해주는 공무원이 보고 싶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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