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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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중이다. 어떤 문제냐면 나와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을 선배로 두고 있다. 깐깐한 성격의 나는 자꾸만 눈에 띄는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바라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쌓아온 나름의 매뉴얼에 후배가 사사건건 집착하며 성가시게 구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한번 크게 싸웠다. 작은 말다툼이야 간간히 있었지만 언성을 높여가며 정말로 싸워 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 후 나는 먼저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예상 외로 따뜻한 답장을 받았는데 내용이 좀 걸린다. 분명 일 처리 문제로 다퉜고, 그에 대해 사과했는데 뜬금없이 ‘너는 화장을 잘 한다’는 외모 칭찬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작은 부탁을 받았을 때도, 남아서 추가 근무를 할 때도 내가 해낸 일에 대해 인정받기보다는 “오늘 얼굴이 화사하다”, “옷 색감을 잘 맞췄다” 등의 외모와 관련된 칭찬을 받았다. 동기에게 내가 꼼꼼하게 잘해낸 일보다는 자연스러운 내 화장법을 배우라고 비교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상의하니 “결국 너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데 좋게 받아들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긍할 수가 없다. 예쁘다는 칭찬이 나쁠 건 없지만,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동문서답은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마치 내 얼굴이나 옷차림 말고는 나의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출근하는 이유는 예쁘다는 말이나 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일자리에서 예뻐야 할 이유도 없고 내 일이 외모와 관련된 일도 아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 주고 잔업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말은 그냥 평범한 ‘고맙다’였고, 선배의 답장에는 ‘다툼으로 상했던 마음이 이제는 풀렸다’는 말이 있기를 바랐다. 상황에 맞지 않는 외모 칭찬은 내가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 건네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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