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새 정부 들어 곳곳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취임 초 “검찰이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공정하게 사용돼 왔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문이 있다”며 검찰개혁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검찰인사에서 이미 시작됐고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로 후속 개혁이 가시화할 전망입니다.

검찰개혁뿐 아닙니다. 교육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등 새 정부가 곳곳에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이라는 혁명적 상황을 거치며 예고된 적폐청산의 로드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改革)은 ‘가죽을 벗기고 바꾸는 일’입니다. 말(言)이 가죽을 벗기고 바꾼다는 것이지, 얼마큼의 고통이 따르는 일인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픽사베이

가죽은 육질을 둘러싼 ‘질긴 고기’입니다. 고기가 진화돼 두꺼운 껍질이 됐을 터… 외부 충격에도 잘 견디게 딱딱하고 질기게 진화된 조직이죠.

가죽은 신발문화에 혁명을 가져온 물건이기도 합니다. 구두가 없던 시절엔 운동화나 고무신이 대종이었고 그 전엔 나막신, 짚신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도 저도 없을 땐 광목으로 발을 싸맸습니다. 옛날 과거보러 한양으로 떠나야 했던 선비들은 짚신을 여러켤레 삶아 괴나리봇짐에 지고 떠났습니다. 짚으로 만들었으니 오래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의 내구연한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킨 재료가 다름아닌 가죽입니다. 그만큼 질겼기 때문이죠.

7080 세대는 가죽구두를 삶아 곰탕을 끓여 팔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xx식당은 유통업자로부터 소의 뱃가죽 100kg을 사들였습니다. 이 소가죽은 공업용으로 구두나 지갑을 만드는 피혁공장에서 쓰다가 대부분 폐기처분된 것들입니다. 중간 브로커들은 소가죽을 피혁공장에서 싸게 사다가 1kg에 400원씩 받고 전국 국밥집에 팔았습니다. 이들이 92년부터 전국에 유통시킨 소가죽은 4t트럭으로 250대분, 3억5000만원 어치였습니다~”


1996년 MBC 뉴스데스크에 방영된 ‘소가죽 곰탕뉴스’의 한토막입니다.고기가 귀하던 시절, 고기껍질로 만든 가죽 폐기물을 다시 삶아 고기처럼 팔았던 겁니다.

가죽이란 말은?
‘겉의 고기’를 뜻하는 겉육(肉)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말 ‘겉’과 한자말 육(肉)이 합쳐져 겉육 > 거듁 > 거쥭 > 거죽 > 가죽으로... 일부 지방에선 지금도 ‘거죽’이라 부릅니다.

가죽은 ‘갖’'갗'으로 줄여 쓰였을 것인바, 갖신(가죽신) 살갗(살가죽의 겉면) 갖바치(가죽제품을 만드는 장인)에 흔적이 있죠. 바치는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나타내는 물건을 만들거나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릅니다.

©픽사베이

가죽의 한자어는 혁(革). 혁명(革命)은 목숨을 내놓고 왕권의 상징인 제왕의 가죽혁대를 바꾼다는 의미라고 하죠. 개혁보다 혁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가 단어 속에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가죽의 고어가 갖-갗”이라고 주장하나 오히려 겉육 > 거죽 > 가죽에서 ‘갖’ ‘갗’으로 갔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살가죽보다 살갗이 더 현대어에 가까운 것이 한 근거입니다.

소 양 악어 등 동물의 가죽은 지갑이나 혁대, 가방 등 생활용품 재료로 여전히 인기입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강치(바다사자)란 놈이 있습니다. 바위가 많고 난류와 한류가 뒤섞여 먹이가 풍부했던 독도가 주 번식지이자 서식지였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강치가죽을 얻기 위해 일본인들이 남획하는 바람에 멸종됐습니다. 당시 강치 가죽은 고급가방으로 만들어져 파리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죽에 얽힌 흑역사입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가죽구두가 화제가 됐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아지오(AGIO)브랜드로 2012년 가을 이 회사 대표가 국회에 구두를 팔러갔다가 문 대통령이 구입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경영난 끝에 폐업했다는 소식입니다만…

장애인들이 만든 대통령의 낡은 구두! 약자를 보듬는 새 정부의 ‘개혁노정’이 됐으면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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