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2009년도에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를 잠시 멈추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외면당한 학생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눈앞의 생존경쟁만 준비하다가 사회로 나가버리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다. 선거 캠프명은 ‘총학의 정석’으로 정했고, 학생사회에서 총학생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을 스스로 실천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했고, 다음날 부리나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사실이었다.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행렬했고,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국화꽃에는 눈물 비린내가 진동했다. 언론사의 정신 나간 오보(誤報)이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눈을 감아도 전해지는 처참한 슬픔 때문에 거짓말 같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귀가 멍해졌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청각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선거 전 반드시 노 대통령을 찾아뵙고 학생정치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결국 다른 이유로 찾아뵙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당선의 영광을 얻었지만 선거 기간 내내 빨갱이라는 소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오늘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찾아갔다. 늦은 시간,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만남을 이어갔다. 모두가 숨죽이고 노 대통령의 말을 경청했다. 때때로 그의 사람들이 출현하여 노무현을 회상했고, 애도했다. 109분 동안의 만남 속에 성실하게 희비(喜悲)가 교차했다.

당신은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였습니다
목숨 바쳐 부끄러움 빛낸 바보였습니다

다들 먹고 사는 게 힘들고 바쁘다고
자기 하나 돌아보지 못하고 타협하며 사는데
다들 사회에 대해서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부끄러움은 잃어가고 있는데
사람이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마저 저 높은 곳으로 던져버린 사람아
박노해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中

영화가 끝나자 노 대통령의 생도 마감되었다. 하지만 그가 외롭게 던진 목숨은 어떻게든 우리들의 삶속에서 공존할 것이었다. 같잖은 레토릭(rhetoric)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위인이었다면 진작에 잊혀졌을터. 그는 매순간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진심을 다하는 위대한 바보였다. 나는 그의 씩씩함을 존경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네이버 영화

대한민국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이 착수되었지만 야만의 사회에서 피어나는 천박성을 여전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남은 자들이 바위에 계란치기 작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거창하게 역사가 어떻고 민주주의 어쩌고 떠들어대기 전에 나의 하루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한 사람이 바꿀 수 없었던 세상을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바꿀 차례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저는 임기를 마치면 이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서 ‘시민 주권 운동’에 한몫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는 이치를 거듭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진보의 미래>, 2009, 동녘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있다. 시민 주권 운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구경 그만하고 옳은 일에 동참하면 된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람 사는 세상이 찾아오면 그때서야 우리는 애도를 멈출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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