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전송]

오늘은 잘 있었냐고?
그동안 별일 없었냐고?
안부가 그리워
다가가 묻고 싶은 단 한 사람
내가 궁금하지 않냐고
보고 싶지 않냐고
그동안 가슴에 심겨진
그리움 한 조각 잘 크고 있냐고
묻고 싶은 한 사람

그 사람이 오늘은 참 보고 싶습니다

며칠 전 오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누군가의 글이다. 지극히 평이한 문장에 통제되지 않은 직설적 감정의 나열, 감상도 감동도 없이 건성으로 훑어 내렸던 이 글에 나는 지금 몇 날 며칠 붙들려 있다.

살면서 익혔던 거의 모든 사람을 세월이란 두터운 창고에 밀어 넣어 놓고, 열쇠도 자물쇠도 어디에 둔 지 잊은 채 식물처럼 살고 있다고 자위해온 내가 비로소 읽혔다.

©픽사베이

안부를 물어줄 사람, 안부가 궁금한 사람을 나는 아직 갖고 있는가.
오래 비워둔 명치 끝자리가 묵직하게 달아오른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자각, 세상의 시간이 한껏 얇아진 어떤 공간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는 자각, 아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은 그렇게 이 평범한 글로부터 왔다.

스스로의 존재조차도 마주 바라본 적 너무 오래됐구나...

집안의 거울이란 거울은 몽땅 찾아내어 손목이 아프도록 닦고, 흡사 내가 그 안에 걸어 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바짝 붙어 서서 바라본 것도, 이미 줄줄 외워지는 이 글 때문이었다.

나는 글을 보내준 지인에게 이런 답신을 보냈다.

살아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리 많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지탱하게 하는 몇 가지 기억...
막막한 시간 속에서도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맞을 때
내가 궁금하지 않냐고, 보고 싶지 않냐고,
그 말을 묻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습니다.

거울을 본다. 익숙하면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해답 불가의 내가 담긴다. 그리고 거울을 들고 움직일 때마다 나와 함께 담기는 내 뒤 풍경도 보인다.

깨닫는다. 거울은 그걸 바라볼 때 나만 담는 게 아니라는 걸. 바라볼 때의 시간과 내가 서 있는 장소, 그렇게 크든 작든 거울이란 나와 함께 내가 서 있는 뒤의 세상도 함께 담는다.

©픽사베이

종일 서재에 있게 된 날, 책상 위에 세워 둔 작은 거울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나와 함께 사방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종일 함께 담긴다.

일몰이 끌어 온 저녁이 좋아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를 나선 날엔, 주머니 속에 넣어 간 직경 8센티 콤팩트 거울에서 초저녁 잠을 준비하는 하늘과 아스팔트와 고요한 나무들이 담긴 걸 본다.

사람이 그리워 오래전 함께 찍은 사진을 거울에 비춰보는 날엔, 그날 그와 함께 있던 벤치와 버드나무와 100원짜리 커피 자판기 컵과 무슨 말을 하며 저렇게 웃었는지까지도 다 담아 들려준다.

©픽사베이

살아가면서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몰라 막막할 때,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도무지 이해하기도 싫고 납득은 더더욱 불가능할 때, 앞으로 앞으로만 걷다가 문득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외진 곳 막다른 곳에 이르러 두 발 얼음처럼 굳어질 때, 작은 손거울이라도 있다면 잠시 들여다볼 일이다. 가시 박힌 발뒤꿈치 뒤의 세상이 조용한 배경이 되어 거울 속에 나와 함께 담기지 않았는가.

어디만큼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세상 누구도 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이미 오래전 터득된 아픔이었다. 그러면서 하나 둘 거울을 사 모았던 것 같다.

카메라가 정지된 시간을 찍어 보관하는 거라면, 거울은 흐르는 시간을 흐르는 대로 비춰주고, 보관된 자신이 아니라 찰나의 자신을 불시에 마주 보게 한다. 그래서 설레고 그래서 아프다.

©픽사베이

지나온 길 어느 한 모퉁이, 불현듯 투명한 그리움에 어디쯤에 내가 서 있는지 찾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한 손에 꼭 들어갈 작은 손거울을 사주고 싶은 날이다.

일본 시인 모치즈키 소노미는 그의 시에서 말했지 않은가.
“인간은 두 번 죽네/ 첫 번째는 죽어 재가 되었을 때/ 두 번째는 존재했음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 ”

두 번째 죽음이 오지 않는다면 사람은 늘 어디쯤에서 살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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