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수업시간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해’라는 말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모르면 질문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하라고 재촉해봐야 질문을 위한 질문, 그러니까 본인도 답을 아는 질문을 형식적으로 하게 될 뿐이다. 개인 과외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하기 전 비슷한 수준에서 대화가 가능하도록 공부부터 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질문은 무례하거나, 때론 우스운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삼각함수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선생님! 3+7은 뭐죠?’라고 묻는 게 적절치 않은 것처럼.

질문 아닌 질문을 하는 자

지난 6월 2일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공방이 이어졌다. 훌륭한 논쟁과 꼭 필요한 질문들로 채워졌지만 일부 의원은 무례한 태도를 보이거나, 적절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김한표 의원은 “아파트를 5000만원에 구입했다고 신고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예/아니오로만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김 후보자는 공인중개사와 법무사가 대리 신고했다는 사실관계를 덧붙여 답변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이진복 정무위원장에게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가) 충분한 말씀을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청문위원들은 5분 동안 핵심을 짚고 의혹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데 비해 답변이 더 길거나 한 부분은 좀 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아니오로 대답할 경우 사실관계가 누락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원하는 방식으로만 답변을 요구했다. 김 의원 입장에선 후보자가 다운계약서 작성을 인정하는 답변을 얻고 싶었겠지만 답변 내용과 형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모습은 질문으로 포장된 폭력에 가까웠다.

김종석 의원의 질문도 적절치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보를 바탕으로 김상조 후보가 담뱃불을 잘못 처리하여 한성대에 6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보 받은 내용이라면 고의적 방화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며, 공정위원장 후보의 능력 검증과도 아무런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질문을 총장에게 할 이유도 없었다. 사건 당시 평교수 신분이던 이상한 한성대 총장에게 나올만한 답변은 “서류상 발화 원인 불명”이라는 사실관계뿐이었다. 차라리 본인에게 물었다면 ‘본인의 과실로 불이 났다고 생각하는가’, ‘감식결과 원인 불명으로 판명되었는데 왜 발전기금을 냈는가’와 같은 내용이 오고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보에서 놓친 부분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질문이 이상한 총장을 향하면서 대상도, 내용도 잘못된 ‘의혹 제기용 질문’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질문하지 못하는 자

한정된 기간에 질문을 준비하고 후보자를 검증하는 동시에 정치적 입장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한계라고 이해해보자. 하지만 질문이 주요 업무인 기자들도 어설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5월 11일 조국 민정수석을 향한 청와대 출입기자의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과거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 지휘나 그런 측면에서 원활하게 소통을 했던 거로 알고 있는데, 어디까지 수사 지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기자는 과거 민정수석이 수사 지휘를 했기에 당연히 조국 민정수석도 수사 지휘를 할 것이라고 전제한 채 질문을 던졌다. 지난 정권이 행하고 보여주었던 모습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기자는 지난 정권을 기준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질문했다. 하지만 조국 민정수석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민정수석은 수사 지휘를 해선 안 됩니다”

우문현답이다.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에 관여하지 않아야 하는 건 하늘이 파랗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차라리 ‘과거 민정수석들의 수사 지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수사 관여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면 식상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 되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과거 검찰 수사 개입에 대한 판단과 민정수석으로서 본인 입장을 밝히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변을 듣기 전부터 ‘민정수석은 수사에 관여할 것’이라고 임의로 판단한 기자의 질문은 청와대 출입기자의 수준이라 보기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픽사베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언론과 청문회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의문을 해소하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임무다. 그러므로 누군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기사를 쓰거나, 누구나 알법한 내용의 질문을 던지는 건 직무유기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질문할 수 있으며, 아는 만큼 답변할 수 있는 법이다. 5월 11일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질문을 더 해달라는 의사를 기자들 앞에서 밝혔음에도 추가 질문이 없었던 것을 상기해보자. 아는 게 없었다는 방증이다. 부끄럽기만 하다.

질문에도 품격이 있다. 훌륭한 질문과 나쁜 질문은 분명 있다. 이젠 수준 미달 질문은 과감히 거절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질문과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질문하지 않는 자, 질문하지 못하는 자,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언론인과 국회의원 명함을 달고 엉터리 질문을 하거나, 그마저도 못 하는 자들이 분명 있다. 스스로 수치스러워 해야 함이 당연하다. 물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현혹돼 애꿎은 사람을 욕하는 자들도 반성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에게 발전은 없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