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나는 신명관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굳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냈다.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정의하기가 뭐하니, 어떤 인식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이름을 기억하고 날 떠올리던지, 날 기억한 뒤에 이름을 끄집어내던지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소하게 느낄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나는 90년도 초에 태어났다. 다른 애들보다 조금 늦게 유치원에 들어갔고 그 외에는 남들과 비슷했다. 친구들을 사귀고 정규 교육을 받고 학원을 다녔다. 남고에 진학해 수능을 봤고 비교적 여자가 많은 학과에 와서 공부했다. 연애도 했고 헤어져도 봤다.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 무언가가 특별하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가진 특별함만큼 누군가도 이미 특별해서,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가득했다.

©픽사베이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기억할 수 있었던 무언가가 항상 있었다. 전교 임원을 연거푸 하던 대단한 친구, 툭하면 울어재끼는 울보. 글을 잘 쓰는 멋진 선배, 90㎏ 가까이 나가던 돼지, 대금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비범한 제자, 헤딩으로 자살골을 넣은 모자란 동창, 전국 피아노 콩쿨에서 상을 받은 형, 요리사 동생, 좋은 오빠, 나쁜 새끼, 진국인 사람, 간사한 놈 등등. 나를 어떠한 인식으로 기억하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좋은 쪽’이나 ‘나쁜 쪽’에 따라 갈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함과 버거움이 동시에 드는 쪽이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살고 싶고 아마 죽기 전까지 나라는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내야 할 것 같은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2000년 전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음을 뭔가 귀납적으로 이해할 것만 같았다. 나에 관한 문제를 풀려는데 ‘이거잖아?’ 라면서 답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그 중엔 나의 일부분이 맞는 것 같다 생각되는 게 있다가도 완전히 정반대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었다. 함부로 고칠 순 없었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고착화된 인식이었기에 깨트리기가 힘들었고, 내가 생각하는 나마저 오히려 사실과 거리가 멀면 멍청한 짓을 하는 거였기에 두려웠다.

산다는 것은 그래서 내게 두려움과 동시에 흥미로움이었다. 난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인 평가를 듣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는 욕구가 없는 선비였고, 변태였다. 천하의 쌍놈이지만 보살이었다. 싼 남잔데 쉽게 넘어오지 않는 남자였고, 유능하고 섬세하다가도 무능하고 헤펐다.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이었고, 낙천적이었지만 염세적이었으며,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이다가도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었다.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소극적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냥 지금까지의 나대로 쭉 살 예정이다.

수많은 사람이 정하는 나의 모습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나도 남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지라, 최근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단 말에 휴학하던 학교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소문도 아니었고 단편적으로 나온 행동들에 대해 그 사람들이 하는 ‘나에 대한 인식’이었다. 오해는 풀렸지만 입맛이 썼다.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파파미’라고 부른다. ‘파도 파도 미담 제조기’의 준말인데, 이것도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으리라 본다. 군대 기다려주고, 감옥 기다려주고, 고시공부 기다려줬는데, 고시 합격하니까 부산 내려가서 인권변호사 하는 문재인을 보고 김정숙 영부인은 자기가 영부인이 될 줄을 알았을까. 나의 누나는 자기 친구였으면 뺨때리고 끌고 왔을 거라 말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고, 생각도 제각각이다.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 ‘그 사람 어때?’가 아니라 직접 가서 대화하고 판단해야 한다. 경험상 무언가 얘기가 들리면 당사자에게 가서 진위를 물어보는 게 훨씬 담백하고 오해가 없었다. 주변에서 착하다고 평가했지만 사실 최악인 사람도, 나쁘다고 하지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내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려올 것이다. 그게 무슨 얘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신명관이란 사람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고, 주위 사람들이 뭐라던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잘한 과거든, 잘못된 과거든, 소문이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와 소통하고 얻은 인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앞뒤 잘라먹고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냥 일기에나 쓰라고 권하고 싶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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