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대규모 적자행진 속에서도 공격경영을 지속해온 김범석 쿠팡 대표가 쿠팡의 최대 강점으로 내세워온 물류부문에 대해 처음 ‘군살빼기’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내부메일을 통해 “앞으로 조직을 ‘lean(군살없는)’하게 만들겠다”고 밝혀 로켓배송과 쿠팡맨 서비스에 변화가 올지 업계가 요주의 중입니다.

군살빼기란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비효율적인 것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일입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군살은 없을수록, 뺄수록 좋죠. 군살의 ‘군’은 가외(加外) 불필(不必). ‘쓸데없는’ ‘없어도 되는’이란 뜻입니다.

‘군힘이 든다’ 할 때의 ‘군’도 같습니다. 낫이나 칼이 잘 들면 힘을 조금만 들여도 되지만 날이 안들면 더 많은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더 드는 힘을 군힘이라고 했습니다. 날이 잘 들었으면 안들여도 될 힘이라는 의미에서...

©픽사베이

갑자기 식구가 늘면 ‘군식구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당사자 스스로도 ‘군입’이라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 외에 더불어 먹고 사는 입(口)이어서 식구(食口)라고는 했지만 ‘없어도 될 식구’란 뜻에서 ‘군식구’라 부른 겁니다.

군것질(군+것+질)의 ‘군’ 역시 같습니다, ‘것’에 제주방언 ‘먹이’의 뜻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것 저것’할 때의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질은 자주 한다는 뜻의 접미사죠.

군더더기(쓸데없이 덧붙이는 말) 군음식(과자, 과일 따위의 끼니 외에 먹는 음식) 군소리 군말(하지 않아도 될말) 군일(안해도 될일) 군침(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괜히 나오는 침, 안나와도 되는 침) 군손질(하지 않아도 될 손질) 군걸음(하지 않아도 될 걸음)도 다같은 ‘군’자 항렬입니다.

‘군불’이란 단어는 다소간 어의변화가 있었습니다. ‘불필요하다’는 뜻보다 ‘고유기능에서 벗어난’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밥이나 음식을 하기 위해 때는 불이 아닌, 단순히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때는 불을 군불이라 했죠.

전통가옥에선 안방이 딸린 부엌에서 음식을 하기에 밥을 지으면 방도 따뜻해집니다. 그러나 건넌방이나 사랑방엔 부뚜막이 없고 아궁이만 있어 방을 덥히려면 별도로 불을 지펴야 했습니다. 엄동설한엔 새벽녘에 방마다 군불을 때야 했지요.

이런 까닭에 군불은 ‘굳이 안 때도 될 불’이 아니라 ‘조리를 하지 않는’(고유기능에서 벗어난) 불이란 뜻이 담겼던 겁니다.

나무가 귀했던 시절엔 음식을 해먹는 데에도 나무를 아껴 썼습니다. 연탄이 보급되기 전까진 서울사람들도 나무를 사서 땠습니다.

‘군’이란 말은?
괜한(아무 이유나 실속이 없다)의 사전적 풀이가 ‘군’과 같다는 데 주목합니다. ‘군’이 ‘괜한’에서 축약돼 온 근거가 될만합니다, 아울러 ‘괜한’ ‘괜히’ 역시 ‘공연(空然)한’(까닭이나 필요가 없다) ‘공연히’에서 온 게 아닌가 합니다.

‘군’ ‘괜한’ ‘공연한’의 뜻도 거의 같죠. ‘군소리’만해도 ‘괜한 소리’에서 괜소리>군소리로 변화해 온 걸로 보이니까요.

“우연히 일어난 새벽에 아궁이 앞에 앉아 군불을 때주는 아버지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곤 우리 방에 들어와 가만히 이불을 끌어 덮어주셨다. 논밭일로 굵어지고 투박해진 아버지의 손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문태준 시인)

시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군불!

필요한 불, 따스한 불로 다가옵니다.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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