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알파치노,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인사이더’는 담배 제조회사와 관련된 내부고발 실화를 다룬 영화다.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제프리 위건드는 미국의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라운 앤드 윌리엄스’의 부사장이었다. 회사 측이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을 담배에 넣는 것을 알고 이를 저지하려던 제프리는 졸지에 ‘의사소통 능력 미달’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해고당하고 만다.

그 무렵, 각종 사회비리를 낱낱이 고발해 온 CBS의 언론인 로웰 버그만은 유해성의 비밀이 담긴 담배회사 내부 자료를 입수하고, 자료의 전문적 해석이 필요하자 제프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망설임 끝에 제프리는 유해성을 증언하기로 결심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은 협박에 시달린다. 생명의 위협까지 받다가 심지어 아내로부터 이혼까지 당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내부고발자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 ‘인사이더’ 스틸컷 ©네이버영화

미국에서 1954년부터 1992년까지 유해성을 이유로 담배회사 측에 배상을 청구한 소송 800여건 중에서 원고가 이긴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용기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제프리의 증언이 로웰의 TV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자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법적 소송이 쏟아졌다. 특히 미국 49개 주에서 제기한 소송에는 제프리가 주요 증인으로 채택되었고, 그의 주장이 합당한 것으로 인용되어 무려 2460억 달러(278조원) 배상 합의를 이끌어내며 사실상 승소했다.

고통을 겪던 제프리가 성공적인 내부고발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는 로웰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 제프리와 담배회사 측의 분쟁에 CBS가 제3자로 개입한다면 소송을 당하거나 파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CBS는 그의 증언을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제프리가 얼마나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인지 알고 있던 로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CBS의 어두운 이면을 뉴욕타임스에 제보함으로써 그 또한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된다. 결국 내부고발이 또 하나의 내부고발을 통해 성공한 것이다.

멀리서 보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정의의 실현이지만 쉬이 감상에 젖을 사안이 아니다. 내부고발이 내부고발로 인해 극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 기형적 생존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생을 담보로 한 처절한 용기가 왜 다시 용기로 지켜져야만 하는가. 비리를 타파하고 공익에 이바지하는 고발은 사회적 제도가 응당 보호할 책임이 있는 만큼 내부고발자를 위한 보호적 규제와 법령의 실효성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복 인사, 보복 징계가 만연한 사회라면 더더욱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국민권익백서(2015)에 따르면 2008년 권익위가 출범한 이후 2015년까지 8년 동안 신고자가 신분 보호조치를 요구한 것은 총 125건이었다. 이중 실제로 보호조치가 이뤄진 사례는 27%인 34건에 불과했다. 문제는 보호조치의 인용심사를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권익위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행정부의 외압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캐나다의 옴부즈만과 같이 의회 산하의 독립기관에서 공익제보를 담당하는 식으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보호조치 인용심사와 관련한 내부방침도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권익위에서조차 외면당한다면 공익신고자는 더 이상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공익신고자 보호조치의 필요요건이나 불이익 처분과의 인과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보다 쟁송에서 적용되는 임시처분의 법리와 같이, 우선은 개인의 권리를 생각하여 보호조치를 한 후 피신고자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제3자인 법원에서 다시 판단토록 하는 방법도 있다.

내부고발자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부실한 사회제도는 공익제보자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픽사베이

이와 관련 최근 국회에서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의미 있는 입법 시도이지만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 공개 시,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4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됐는데, 물리적인 상향 폭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타당성이 떨어진다. 두 법률에 위반된 사안을 각각 구체적으로 비교하면 경중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공익신고자의 예상 피해가 훨씬 크다. 따라서 공익신고자가 곤란해지지 않도록 벌금 폭을 추가로 높여야 한다.

공익신고자 보상금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권익위 백서에 따르면 공익신고를 통해 2015년까지 환수한 금액은 864억6370만원에 달한다. 반면 보상금 지급액은 74억7100만원에 불과했다. 신고 건당 평균 보상금액은 4151만원으로 평범한 직장인의 1~2년 치 연봉에 불과하다. 적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간 몸 담은 직장으로부터 단절될 위험이 있고 막대한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런 현실을 인지한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재벌 총수들이 미르, K스포츠재단에 냈던 약 800억원의 돈을 환수하여 ‘공익제보자 보호기금’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적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법률, 규제 등이 마련할 수 있는 형식적 보호를 넘어 왕따, 보복 인사 등의 불이익 또한 상쇄할 수 있는 보상 제공과 환경 조성을 위한 재정 풀(Pool)의 필요성을 실감한 목소리일 것이다.

내부고발의 영향력은 어떠할까. 대표적으로 광주 인화학교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교사로 재직하던 전응섭 씨의 고발로 다른 교직원들의 극악무도한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성폭력 혐의로 직위해제 됐던 교사들이 복직되고, 오히려 전 씨가 해임이 되는 등 역시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정당치도 못했다.

실패로 끝날 뻔한 결과를 바꾼 것은 소설과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한 시민의 관심이었다. 2009년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출간되고 2011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자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노 여론이 일어났고 이는 곧 사건 재수사와 함께 관련자 처벌로 이어졌다. 결국 장애 아동에 대한 성범죄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까지 통과됐다. 결국 내부고발은 사회와 시민의 공동체적 참여가 있어야 완전해질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인 것이다.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흘러간 탄핵, 조기대선 정국에서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1700만 촛불이 켜지고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나라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모든 것의 발단이 된 신호탄 중 하나가 누군가의 내부고발에서 온 것임을 말이다. 한 나라의 운명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내부고발과 공익제보는 한 사람의 고독하고 처절한 용기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될 수 있어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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