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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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대학 시절, 꿈을 꾸는 한 선배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중요한 소설가로 그의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이 선배는 대학 시절 두툼한 책 한 권을 옆구리에 항상 끼고 다녔다. 그 책을 뛰어넘는 글을 쓰고 말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선배가 사주는 술을 많이 얻어마셨던 나는 예의상(?) 그 책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스위스 다보스 산 속 결핵 요양원이다. 주인공 한스가 이곳에서 요양중인 사촌을 3주 예정으로 방문한다. 그러나 그도 이곳에서 결핵이 발견되어 결국 7년간 머무르게 된다. 그동안 한스는 요양 중인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다.

19세기 시대를 이끌었던 발전적 합리주의자 ‘세템브리니’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원시 공산사회주의자 ‘나프타’의 논쟁. 이 이원적 구조는 소설의 맥락을 긴장감 있게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표상하는 이성주의는 본능적 감성에 기반한 인간 존재론을 주장하는 ‘페파코른’과 새로운 중층적 이원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러시아 귀족 부인 ‘쇼샤’는 한스를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으로 이끈다. 주인공 한스가 만난 인물들은 당대 현실을 떠받치는 관념과 가치관이었고,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자아정체성의 편린들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글을 읽다가 나는 중간에 포기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이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극적인 사건 전개도 없고, 번역 문체도 딱딱했다. 그때까지 쌓아온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그 논쟁들의 내용이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서였다.

다시 읽어보는 <마의 산>은 이전과 달리 흥미진진했다. 산 위 요양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그곳은 현실로부터 고립된 세계지만, 현실 세계를 조감할 수 있는 관념적 지점이기도 했다. ‘나’와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를 현실로부터 격리시켜서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스는 요양원에서 세계를 대상화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확보했던 것이다. 한스의 요양원 체류는 인간과 현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면서 인생의 항로를 찾는 파란만장한 모험적 여행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 소설에는 독일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백미라는 평가가 따라 붙는다. 성장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이 소설에서 토마스 만은 인문사회과학적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해 가는 한스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다. 7년간 이런 과정을 거친 한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산을 내려간다. 그러나 그가 전쟁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작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어떤 정신적 성숙과 세계관을 구축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명쾌한 결론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고 토마스 만의 뒤를 쫓아가던 나는 그만 그가 만든 깊은 심연에 빠지고 말았다. 노벨위원회는 이런 일을 저지른(?)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깊은 심연에 빠진 나는 무엇을 했던가? 다른 책들을 찾았다. <신곡>도 찾고 <도덕경>도 찾았다. 난독이었다. 심연을 벗어나기 위한 내 방식의 여정이었으리라. 루카치의 말대로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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