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보다]

‘후원 빌런’이라는 말이 있다. 빌런은 악당, 악역이라는 뜻으로 슈퍼 히어로 무비에 등장하는 악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쓰인다. 후원 빌런은 SNS상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후원을 요청하는 사람을 비하해서 표현하는 용어이다. 후원을 빙자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악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SNS상에서 후원 요청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글로 쓰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계좌번호를 공개하면 후원에 관심 있는 사람이 계좌로 돈을 입금한다.

©픽사베이

최근에 어떤 이가 이런 방식으로 후원 받은 돈으로 여성용 자위기구인 딜도를 샀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즉각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막강한 후원 빌런의 등장’이라고 비아냥댔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해 후원을 받았으면서, 정작 그 돈으로 딜도를 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공개했다는 것이 주된 비난의 요지였다. 심지어 기초수급권자였던 그 사람의 관할 주민센터에 연락해 수급권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신고했던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실제로 후원을 했던 사람이 글을 올려 후원 받은 돈으로 무엇을 하든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비난 자제를 당부했다. 그 뒤에도 사람들의 분노는 쉬이 수그러지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굳이 딜도를 샀다고 공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시 고민해보니 무얼 샀든, 그걸 공개하고 말고는 당사자의 마음이다. 그걸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내게 없는 거였다. 그 딜도의 가격은 15,000원이었는데 만약 당사자가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올렸다면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을까?

결국 문제는 딜도였다. 후원 받은 돈으로 밥을 먹고, 책이나 영화보는 것은 괜찮지만 딜도를 사서 성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그런 성적 즐거움은 필수가 아닌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혼자 은밀히 딜도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감히 여자가 말이다. 거기에 많은 남성들이 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정작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흥분해서 비난을 퍼붓는 것도 흥미롭다. 한발 더 나가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급권자 자격을 박탈해 달라고 요청했다니 대체 이런 무례한 오지랖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고, 벌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악당이 아닐까.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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