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가르는 것은 거의 동물적인 습성인 것 같다. 그러나 외국을 오가다 보면 남의 것을 배척하는 한국인의 제한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dual citizenship)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개각 때를 비롯해서 무슨 때만 되면 이중국적자가 문제가 되고, 이중국적이라는 이유로 인사 대상에서 탈락되거나 낙마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중국적으로 논란이 된 사람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14년 전,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부장관이 된 연봉 60억원의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이 하마평에 오르자, 많은 언론매체들은 일제히 그가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여론을 형성했고 이와 함께 ‘뜻하지 않게’ 정권획득에 실패한 야당도 연일 공세를 취했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나라도 이중국적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며, “진 장관의 해임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같은 보도를 접하고 나는 ‘이중국적의 문제가 이젠 해결의 가닥을 잡아 더 이상 그 같은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했고 지지했었다. 그러나 그 후 이제까지 이중국적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어떠한 정책도, 방침은 물론 최소한의 입장 정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인사를 고집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생각으로 실망하게 됐다.

4년전,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됐던 미국 벨연구소 김종훈 소장 역시 이중국적 논란에 휘말려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김종훈씨 경우는 미국내 교민사회에서도 반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한 장관의 임명이 교민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이중국적 문제가 본질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강경화 외교부장관 딸의 이중국적 문제가 다시금 논란이 됐다. 위장전입 등 다른 문제점들에 묻혀 이중국적 문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중국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강 장관의 청문회 발언은 흘려버릴 이야기가 아니다.

예상컨대 머지않은 장래에 이중국적이 아닌 3중, 4중의 국적, 곧 다중국적(multiple citizenship)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해외동포, 특히 재미교포 중에 이중국적을 염원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의 문제가 정서적인 문제로부터 법률적, 경제적인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상당기간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2014년 외무부 재외국민 통계에 따르면 한국계 미국인 시민권자는 150여만명이다. 그 중 40%가 귀화 이민 1세대이고, 32.5%가 미국 출생자이다. 재미한인 가운데 58% 가량이 시민권을 취득했다. 사람이 다르고 생각도, 배경도 다르겠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미국 국적을 취득해도 모국의 국적을 인정하는 나라가 2015년 현재 50개국 가까이로 늘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산해보니 자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시민권을 잃지 않고 군대복무까지 하는 특별한 관계이다. 특히 처음부터 국제화가 자동적으로 된 이스라엘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해외의 2세, 3세 동족 자손들이 쉽게 내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있다. 국적과 출생지, 일시적인 국적 변경이 각료는 물론 대학의 교직에까지 논란이 되는 우리나라와는 퍽 대조적이다.

현재 미국의 언론계, 체육계, 학계, 연예계, 부동산, 기업, 과학계 등등에는 외국 국적을 가진 인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전문직에서 능력이 있으면 국적을 문제삼지 않고 기용한다. 미국의 장점은 조상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즉 전문적 기능을 최대로 활용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나라나 공직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러나 학계, 학술계에서 국적을 따지는 사회는 그만큼 국제화가 늦어지는 사회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국적문제에서만큼은 ‘한치도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주영대사관의 외교관을 만나 북한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치열한 논쟁을 한일이 있었는데, 그를 생각하며 이중국적 문제를 다시한번 떠올린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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