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가야사 복원 사업을 정책 과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당부한 것을 두고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특정 역사에 개입한다면 국정교과서를 만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서는 가야사가 그동안 지나치게 소외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대통령의 관심을 가야사 규명의 기회로 활용하되 정치적 의도가 스며들 여지는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가야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체 왕국’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남 일부지역에 국한된 세력인 줄 알았던 가야가 최근에는 호남지역에도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증거가 발굴조사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심지어 ‘이러다가는 가야의 중심이 영남에서 호남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목소리조차 나오고 있다.

대가야 강역도 ©고령 대가야박물관 제공

1982년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 공사구간인 전북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에서 봉토 지름이 20m 안팎에 이르는 9기의 대형 고분이 확인됐다. 처음에는 백제계 무덤일 것으로 추정했지만 원광대 조사단의 발굴이 진척되면서 가야계 옛 무덤으로 굳어졌다. 고고학자들은 낫과 도끼의 미니어처, 갑옷모양 미늘과 마구(馬具) 등 월산리 고분군의 양상이 대가야의 옛 땅인 경남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원시 동북단인 아영면은 경남 함양군과 경계에 해당한다. 해발 450m를 넘나드는 소백산맥 서쪽의 고원지대를 이루는 두 지역은 오늘날의 행정구역과는 관계없이 과거에는 같은 문화권이었다. 월산리 고분군과 함양 상백리 고분군 역시 같은 가야계 세력의 무덤으로 봐야 한다. 1972년 동아대 박물관이 긴급 구제 발굴에 나선 상백리 고분군에서는 가야의 비늘갑옷과 함께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판갑옷이 출토되기도 했다.

남원시 북쪽의 진안고원에서도 1993년 이후 가야의 흔적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무주·진안·장수에 걸쳐있는 진안고원에서는 300기 남짓한 가야계 대형 무덤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200기의 고총은 장수에 몰려 있다. 주변에는 80곳 남짓한 봉수가 장수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봉수가 집중됐다는 것은 당연히 정치적 중심지라는 뜻이다.

전남 지역에서 가야세력이 분포했던 흔적이 드러났다. 순천을 중심으로 광양, 여수, 구례, 보성, 고흥 등 섬진강 서쪽 전남 동부는 그동안 마한과 백제의 영향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발굴 조사에서 마한과 백제 사이 가야의 영향이 집중된 시기가 드러난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아라가야, 금관가야, 소가야, 대가야의 문화가 확인됐다. 가야가 한때는 한반도 남쪽 해안부터 중부 내륙 지역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었다는 증거다.

경북 고령군에서 대가야시대 궁성지와 관련한 해자垓子)와 토성(土城)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궁성지 외성벽 전경. ©고령군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가야사 복원’이 의미있는 성과를 낳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개인적으로는 TK( 대구·경북)가 정치적 기반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한 경주 왕경 복원 사업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발굴조사를 서둘러 끝내고 신라 전성기 옛 서라벌의 모습을 하루빨리 되살려 한 사람이라도 관광객을 더 불러모으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주 왕경 복원 사업은 역사의 복원과 옛집의 복원을 혼동한데서 오는 무지의 산물이었다. 발굴이란 땅밑에서 금관을 찾아내고 금동불상을 찾아내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잊힌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기초 조사다. 그런만큼 때로는 금관이나 금동불상보다 한 두 글자가 새겨진 깨진 기와 한쪽이 더 의미가 클 수 있다. 그런데 경주 왕경 복원 계획은 발굴조사를 옛 건물 복원을 위한 요식행위로 치부하고 있으니 암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2015년부터 신라왕성인 월성의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역설적으로 왕경 복원 계획에 따라 마음 고생이 컸을 것이다. 월성 발굴조사는 당초 2023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훗날 ‘신라 역사를 영원히 미궁에 빠지게 한 졸속 발굴’이라는 비난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문화재연구소가 모를리 없었기 때문이다. 비판론이 불거지면서 초고속 발굴계획은 다행스럽게 속도조절에 들어간 양상이다.

가야사 규명 역시 발굴조사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경주의 분위기가 그랬듯 가야 지역 주민들 역시 ‘관광 자원화’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과연 무엇이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을 수 있는 관광자원인지 학계와 주민,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남 함안군은 올해부터 오는 2021년까지 총사업비 879억원을 들여 ‘함안 가야문화 관광단지 조성’ 및 ‘아라가야 역사 연구 및 복원사업’ 등을 추진한다. 사진은 경남 함안군청 인근에 위치한 ‘함안말이산고분군’의 모습. ©함안군

물론 발굴 현장이 고고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인디아나 존스’만큼 다이나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발굴조사 기관의 적절한 배려가 뒤따른다면 발굴 현장은 복원된 옛 구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적절한 배려’란 말할 것도 없이 탐방객을 위해 안전한 동선(動線)을 만들고,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하는 학예직으로 하여금 깊이있게 설명을 하도록 하는 서비스다. 알기 쉽게 ‘발굴 투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소장 유물을 어떻게 전시해야 관람객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발굴 투어’를 기획하는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호남 지역의 가야 유적 발굴은 이제 시작이다. 5년, 10년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우선은 훼손 위기에 있는 가야 유적을 보존하는 노력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중요 유적이 자리잡은 사유지를 매입하는 예산은 빨리 집행할수록 좋다. 반면 특정 집단에 특혜성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학술 발굴은 당연히 우선 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발굴이 본격화되면 모든 조사 주체는 어떻게 하면 현장에 많은 탐방객을 불러모아 지역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야 지역이 우리나라 ‘발굴 투어’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기 바란다. 아무런 역사적 근거없는 복원으로 진정성이 사라진 ‘관광 유적’보다 훨씬 더 큰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발굴 현장의 힘’을 가야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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