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어항마름과의 여러해살이 수생식물. 학명은 Brasenia schreberi J.F.Gmelin

“네가 나로 살아 봤으면 해/내가 너로 살아 봤으면 해/
단 하루라도 느껴 봤으면 해/너의 마음/나의 마음” (2NE1 - ‘살아봤으면 해’에서)

그렇습니다. 하루는 ‘너’로 살고 하루는 ‘나’로 사는 식물이 있습니다. 인간사에선 너로도 살아보고 나로도 살아보는 게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식물계에선 허황된 몽상만은 아닌가 봅니다. 첫날은 암꽃으로 살고 그 다음날은 수꽃으로 사는 순채(蓴菜)가, 만화 같은 소망이 엄연한 현실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잔잔한 연못에 순채의 연두색 타원형 이파리와 홍색의 꽃이 그림처럼 떠 있어 보는 이의 마음마저 평화롭게 한다. ©김인철

지금은 일부 야생화 동호인 외에 많은 이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순채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연꽃이나 수련, 마름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수생식물이었습니다. 나물 채(菜) 자가 이름에 들어있듯 잎과 줄기 등을 쌈과 국 등으로 식용하거나, 약재로 활용했을 만큼 전국적으로 폭넓고 풍성하게 자라던 우리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와 산업화의 여파로 순채가 자라던 크고 작은 물웅덩이, 연못, 저수지 등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자취를 감춰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해지면서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연분홍 암술이 중앙에 자리 잡은 암꽃. 꽃자루에 투명하고 끈끈한 점액질이 가득 덮여 있다. ©김인철

제주도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기까지 몇몇 오래된 연못에서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는 순채는 고달픈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해마다 어김없이 5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단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우리에게 선물처럼 내어줍니다. 꽃자루마다 하나씩 달리는 꽃은 단 이틀 동안만 피는데, 첫날 오전 암술이 성숙한 꽃으로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물속에 잠깁니다. 그리고 다음 날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높이 솟은 꽃자루에 수술이 풍성한 꽃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둘째 날 올라온 수꽃. 진홍의 키 큰 수술이 풍성하게 돌아 나서 중앙의 암술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김인철

첫날 10개 안팎의 연분홍 암술이 성숙한 암꽃으로 피었다가 둘째 날 암술을 둘러싼 진홍색 수술 20~30개가 높이 자라난 수꽃이 되어 물 위로 솟구치는 것은, 자가 수정에 따른 열성 유전을 피하려는 고도의 종족보존 본능의 결과라고 식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순채의 암꽃 한 송이와 수꽃 세 송이. 키 작은 암꽃과 불쑥 솟은 수꽃의 모습에서 자가 수정을 피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김인철

꽃은 지름 2cm 안팎의 크기로, 각각 3장인 꽃잎과 꽃받침 잎이 모두 꽃잎처럼 보이지만 꽃잎이 꽃받침 잎보다 다소 길어 구분됩니다. 특히 1m까지 자라는 물속줄기와 꽃줄기, 그리고 어린잎은 점액질 또는 우무질이라 불리는 투명하고 끈끈한 액체에 싸여 있는데, 그들이 예로부터 약재이자 나물로 쓰여 왔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을 가득 채운 순채 이파리와 꽃. 멸종위기 야생식물로서 전국적으로 자생지가 많지는 않지만, 자생지 내 개체 수는 풍성한 모습이다. ©김인철

다 자란 잎은 길이 8~12cm, 너비 4~6cm의 방패 모양인데, 수면을 가득 채울 듯 떠 있는 모습은 싱그럽기 그지없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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