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린의 작은 음악상자]

©픽사베이

이쯤 되면 시원하게 비가 올 만도 하건만, 요즘 날씨는 더워지기만 할 뿐 좀처럼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천엔 평소보다 음악 듣기가 더 좋다. 하루 종일 시원하고 사람들의 감성이 촉촉해질 뿐만 아니라 음악 소리에 빗소리가 섞여 더 운치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날 듣고 싶어지는 노래들 역시 비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은 그 중 3곡을 선별해 소개한다.

우천(雨天) 클래식,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노래다. ‘비’하면 사람들 마음 속에 번뜩 떠오르는 애창곡 중 하나지만, 솔직히 나에겐 꽤 올드하다. 심지어 이 곡은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1986년에 발표됐다. 시간이 흘러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게 된 건 2012년이었다. 웃기게도 피아노 연주 게임을 하다가 처음 듣게 됐다. 초보자용 곡 중에서도 가장 느린 편에 속해 게임을 못하는 나는 몇 번이고 이 곡을 연주했었다. 반주부터 보컬까지 전체적으로 ‘옛날 노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느린 멜로디 속에 그리 거창하지도 않은 가사 몇 마디가 짧게 들어 있는데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노래였다. 오히려 중후하고 꽉 찬 느낌이 들었다.

1986년 발매된 김현식 3집 음반. ©멜론

옛날 로맨스 영화를 노래 한 곡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나올 것 같다. 내 세대가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미사여구나 돌림 없이 담백하게 감정을 말하는, 있었던 일을 일기에 솔직히 쓰는 듯한 가사가 좋다. 거세게 내리는 비보다는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우산을 딱 펼쳤을 때 노래가 시작된다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 것이다.

박정현이 부활시킨, 부활의 ‘소나기’

박정현과 부활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 게 바로 이 곡이라고 생각한다. 원곡은 부활의 3집에 실렸던 꽤 오래된 곡이지만,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에 의해 새롭게 변주됐다. ‘소나기’의 가장 큰 매력은 아름다운 가사이다. 순수 한국어로만 지어진 가사는 시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예술성이 돋보인다. 거기에 가수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는 절제된 반주가 더해져 나긋나긋하게 진행되다가, 클라이맥스에서는 록 반주와 함께 감정이 한번에 터져 나오는 구성을 보여 준다. 발표 당시 그다지 큰 히트를 치지는 못한 곡이지만,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아티스트와 내가 이 음악을 통해 직접 소통하는 기분이다.

‘소나기’가 수록된 부활 3집 앨범. ©한국대중가요앨범

이 노래의 팬들은 대부분 박정현이 김재기 보컬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노래는 굳이 비교를 하기보다 각자의 매력이 다르므로 개별적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활의 전 멤버인 고 김재기 보컬의 원곡에서는 통나무 오두막 같은 느낌이 난다. 재료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완성품에는 서늘한 기운이 돈다고 할까. 새로 녹음된 박정현의 버전은 원곡에 비해 화려함과 투명한 느낌이 더해졌다. 박정현 특유의 엇박 창법과 어우러지는 풍부한 기교가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감정이 증폭되어 흑백이었던 노래가 파란색이나 하늘색 정도로 색이 칠해진 듯하다.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맑아졌을 때, 공기가 아직 비 냄새를 머금고 있을 때 들을 만한 노래이다.

주걸륜의 첫사랑을 담은 칠리향(七里香)

대만 문화를 즐기지 않아도 ‘주걸륜’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한국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대만에서 이미 오랜 기간 정상급 인기를 구가하는 국민 스타이다. 영화 제작과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노래와 피아노 등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주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혐한(嫌韓)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으나, 우선 여기서 소개할 노래는 가수의 사생활과 별개이다.

주걸륜의 칠리향 앨범.

대부분 비를 소재로 한 노래들과 다르게, 칠리향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담고 있다. 중국 전통 악기를 이용해 연주한 반주는 특유의 감성을 잔뜩 머금고 있다. 주걸륜은 약간 높은 톤에, 끝부분마다 힘을 일부러 빼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래서 한밤이나 아침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곡들을 잘 소화해낸다. 칠리향은 그런 특징이 잘 녹아있는 곡이다.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밤새 내리는 비’와 ‘흘러 넘치는 빗물’이란 가사에 마음을 투영하며 독백한다. 너는 어땠었지, 어떤 말을 했었지, 하고 참새와 고양이를 보며 조곤조곤 읊는다.

주걸륜은 작사와 작곡도 맡고 있는 재능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한자로도 저런 섬세한 감정이 표현된다는 걸 볼 수 있다. 가사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단어이고, 의미이다. 그래서 한 음절을 발음할 때마다 꾹꾹 글자를 눌러 쓰는 모습이 연상된다. 분명 한국의 가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이 또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전해 준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저녁, 창가에 앉아 듣기 좋은 노래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김채린

 노래 속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숨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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