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군대는 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줄은 열(列)이죠. 가로 줄은 횡대(橫隊), 세로 줄은 종대(縱隊)입니다. “2열 종대로 헤쳐 모여!”하면 두줄로 길게 서라는 훈령입니다. 군에서 열을 맞추는 일은 훈련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대는 줄’이라는 말이 훈련이나 작전에만 유용했던 건 아닙니다. 군필 7080 세대들이 겪었을 논산 등지 훈련소에선 기초훈련을 끝내고 자대배치를 받을 때 특히 줄을 잘 서야 했습니다. 줄을 잘못 선 병사들은 최전방 철책으로, 줄을 잘 선 병사는 후방으로 배치됐으니까요. 요즘이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자대배치가 이뤄지겠지만 그때만해도 특기병이 아닌, 일반병의 경우 선택기준이 ‘줄’이었던 겁니다.병사입장에서는...

줄을 ‘아주 잘 서면’ 특수부대(보안대나 커투사 등)로도 차출됐습니다. 커투사는 지금이야 영어시험보고 추첨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엔 대열 어디에서 선택될지 병사입장에선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앞에서’ 짤리기도 하고, ‘바로 뒤에서’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복불복이었죠.

줄 잘 못섰다가 강원도 인제나 원통으로 배치되는 병사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원통해서 못살겠네~”라며 한탄들을 쏟아냈습니다.

군인들의 훈련 장면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훈련소 줄 말고도 열외(列外)란 관행이 군에 있습니다. 줄 밖이란 게 본뜻이지만 각종 훈련이나 사역(使役)에서 제외되는 병사들을 말하죠. 당번병이나 상황병은 주로 열외사병으로 분류돼 유격훈련에도 빠졌습니다. 말그대로 ‘특과’여서 군에서 열외란 그만큼 좋은 걸 의미했습니다.

그러던 열외가 해병대로 가서는 기수열외(期數列外)란 괴물로 태어납니다. 해병대에만 있다는 기수열외는 특유의 집단 따돌림입니다.

해병대는 기수로 위계질서를 세웁니다. 그러나 기수열외 대상이 되면 후임자들이 선임 대우도, 선임자들이 후임대우도 안해줍니다. 부대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대원들 눈 밖에 난 특정사병을 몇몇 상급자의 주도아래 하급자까지 동참시켜 집단 왕따를 시키며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행태죠.

2011년 7월 4일 강화 해병대 2사단 부대에서 총기 난사사고가 발생합니다. 장병 4명이 현장에서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습니다. 사고을 낸 김모 상병은 수류탄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중상을 입습니다. 그는 사고후 문답조서에 “너무 괴로워요. 죽고 싶어요.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해요”라고 적었습니다. 모 일병의 주도로 후임병들이 기수열외를 시켜 선임대우를 안해줬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고문관이란 말이 있습니다. 본래 6.25 전쟁 당시 한국에 군사기술을 전수하러 온 미국의 군사전문가를 고문관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서툰 한국어 실력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잦은 실수를 하게 되자 ‘고문관’이란 용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실수가 잦은 병사까지 범칭하는 용어로 정착됩니다. 그런 연고로 고문관으로 찍히면 왕따취급을 당했습니다. 어리버리하거나 집합시간에 늦는 병사가 고문관으로 찍혀 눈총을 많이 받았죠.

기수열외나 고문관이나 왕따나 일종의 심리적 집단고문입니다. 오죽하면 총기난사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까지 가겠습니까? 왕따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학생도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잉여인간(쓸모없는 존재) 열외인간(사람대접 못받는 존재)으로도 진화됐습니다. 조금 더 보듬어주고 다뜻하게 감싸주면 피해가 줄어들텐테... 현실은 아직입니다.

©픽사베이

‘깍두기’란 게 있습니다. 예부터 어린아이들이 놀때 이편 저편도 아니지만 아무 편에나 들어가서 놀게 해줬죠. 좀 불리하다 싶은 팀에게 덤으로 끼워서 같이 놀아주었습니다.

이 깍두기 놀이관행이야말로 왕따 치유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치와 비교해 주 반찬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놓이면 풍미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깍두기가 필요하듯...

왕따 퇴출을 위해 ‘깍두기 문화’를 살려나가야 겠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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