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련의 그림자]

최근 ‘아이돌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당황했다. 가수를 뽑는다면서 지원자 모집조건으로 노래와 춤이 아닌 ‘얼굴이 예쁜, 마음이 예쁜, 끼가 예쁜 소녀’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끼가 있는’이 아닌 ‘끼가 예쁜’이라는 어색한 표현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예쁨을 강조해야 할까 싶었다. 교가도 나왔는데, 그 제목이 <예쁘니까>였다.

미에 대한 강요는 아이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도 흔히 ‘용모단정’이란 이름 아래에 외모를 기본 조건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쥬씨 서강대점의 채용공고에는 ‘외모 자신있으신 분만 연락주세요’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다. 정부 주관 행사인 KCON2016의 통역사 채용공고에서도 ‘용모중요, 예쁜 분’이라는 업무와 상관없는 조건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우리 사회에 외모지상주의가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쥬씨, KCON2016 채용공고

이러한 사회의 요구는 타인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집착하게 만든다. 따라서 매체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에 시달린다. 외모도 경쟁력이라 여겨지며 면접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성형하는 ‘취업성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비난받거나 차별받지 않기 위해 미의 기준에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곤 한다는 점이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외모서열을 메기거나 당사자를 앞에 두고 너는 어디를 고치면 예쁘겠네, 살만 빼면 예쁘겠다, 식의 평가를 한다. 혹은 이런 말들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아래 사진처럼 폭력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 Gelato, Haley Morris-cafiero

사진 속 주인공은 헤일리 모리스 카피에로라는 사진작가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다른 사진들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표시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신도 이런 시선을 받아보거나 던진 적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없는 비극의 파도는 끝없는 갈증을 일으킨다. 외적인 모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며, 그 만족감은 일시적이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워야하고, 그것을 채워도 공허하다. 당장 외모지상주의의 수혜자라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예쁘다”는 것에는 젊음이 포함되어 있기에 결국 평생 외적인 모습만으로 행복을 얻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당장 예쁘고 잘생겨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도 많은데, 못생겼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잔인할 정도로 이상적이니까.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야한다.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은 날씬하고 예쁜 것만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풍만한 몸이 부의 상징이며 아름다움의 기준이듯이, 겉모습은 미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진정한 나에서 나온다. 몇 키로 더 빼면, 여기를 좀 고치면 이런 조건들은 필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순간,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 올리비아 캠벨,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혜련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회가 되길 바라며 씁니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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