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19대 대선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다닌 말은 “대통령이 되면 먼저 평양에 가겠다”였다. 남북 대화의 의지를 강조하다 나온 이 말은 그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대표적인 발언으로 꼽혀 반대세력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대상이 되었다.

문 대통령이 28일 취임 후 최초 외국 방문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누가 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미국을 제일 먼저 가는 것은 지금의 한미관계 아래선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대통령이나 야당이나 공연한 소리로 공연한 공방을 벌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길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무거워 보인다. 취임 첫 해인 두 대통령이 서로에게 덕담을 나눌 겨를도 없이 현안들과 씨름해야 하는 대면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남한 내의 사드 배치는 발등의 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6·25전쟁 제67주년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국가유공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군가를 부르고 있다. ©청와대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다. 동맹관계를 정신의 영역보다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문 대통령과 측근들이 미국 측의 불필요한 의구심을 사는 발언들을 해서 구구한 해명도 필요하게 됐다.

한미 간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방미는 갈등을 해소하고 동맹을 강화할지언정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두 나라 간에 쌓아올린 관계가 깊고 넓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관계의 실증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방미의 첫 일정은 장진호전투기념비 방문이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유엔군이 후퇴하면서 치른 가장 혹독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엔군의 철수 작전이 유명한 흥남부두 철수다.

흥남부두 철수가 단순히 10만명 병력의 철수에 그쳤다면 역사적인 사건은 못됐을 것이다. 실어올 군수물자를 버리면서 흥남부두에 몰려든 10만명의 민간인을 태우고 왔기 때문에 패배의 항해에서 승리의 항해로 남게 됐다.

그 민간인 가운데 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가 있었다는 것은 한미 관계사에서 특기할 사건이다. 문 대통령은 부모가 미군 수송선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도착한 거제에서 3년 뒤에 태어났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미국에 가서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하는 장면 이상으로 한미관계를 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의 방미단 중에 필자의 지인 한 사람이 있다.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탑재참모였던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 씨다. 그는 부인 아들과 함께 한국에 살면서 흥남부두 철수작전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그의 책은 흥남철수의 주인공인 포니 대령과 한국인 통역장교 현봉학과의 우정을 바탕으로 당시 철수한 생존 민간인 3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흥남철수의 역사를 더듬는 내용이다. 청와대가 그런 사람을 찾아내 방미단에 포함시킨 것은 사려 깊은 처사다.

이처럼 흥남부두 철수는 생존자와 후손들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두 나라가 그런 역사를 잊지 않는 한 양국관계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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