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올해는 메주콩을 재배해 메주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메주를 띄우고 장 담그기까지의 과정도 지난한 일이겠지만 사실 콩 재배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더욱이 이번 메주콩 재배지는 산골이어서 천적들과의 싸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농촌 어디나 비슷하지만 콩 씨앗을 심으면 백이면 백 멧비둘기의 먹이가 돼버립니다. 이 녀석들이 얼마나 영리한 지 흙속에 숨겨져 있는 콩알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먹습니다. 학습효과 탓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사실마저 알고는 콩알 심은 곳만 콕콕 파먹는 데야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몇해 전엔가 종묘상에서 콩 씨앗에 빨간 페인팅(유해하지는 않음)을 해 팔기도 했습니다. 한두해는 이 ‘빨간 콩’의 약발이 좀 먹혔습니다. 빨간 콩을 처음 본 녀석들이 경계움직임을 보여 덜 쪼아 먹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도 얼마 못갔습니다. ‘빨간 콩도 콩’이라는 걸 알고는 이마저도 여지없이 파먹었습니다.

새들의 극성 때문에 산골에서의 콩농사는 이제 '어려운 종목'이 됐습니다. 옛날에야 콩이랑 만들어서 발뒷꿈치로 꾹! 누르고 심으면 됐지만 이제는 모종을 내지 않으면 콩농사 짓기가 어렵게 된 겁니다. 모종도 떡잎에 남아있는 영양가가 소진될 때쯤 밭으로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종 떡잎마저 새들이 똑똑 따먹습니다.

©픽사베이

그래서 올 콩농사는 불가피하게 모종으로 했습니다. 모종은 동네 어르신한테 부탁했습니다. 모판에 콩알을 심은 뒤 2주일쯤 뒤 밭에 옮겨야 한다는 어르신 당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2주일이 다가올 즈음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뭄이 워낙 심해 콩모종을 심으려는 밭에 먼지가 폴폴 나는 것이었습니다. 농업용수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종을 심어도 가뭄이 지속되는 한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천상 하늘만 바라봐야 할 상황. 모판의 콩모종은 2주가 다돼가고 비소식은 없고… 이런 걸 두고 ‘농심이 타들어간다’고 했구나…실감이 났습니다.

콩알로 심으면 비둘기 밥이요, 모종으로 내면 말라죽을 판. 이래저래 콩 농사는 글러먹은 듯했습니다.

그러다 운좋게 2주가 다돼가는 날 저녁에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기회다 싶어 어르신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콩 모종은 벌써 많이 자랐습니다. 너무 자라 모판에서 조차 견기디 힘들 정도로… 더 늦으면 옮겨 심을 때 부러지거나 부실 웃자람으로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죠.

비 소식이 있는 날, 이때다 싶어 얼른 콩 모종을 심었습니다. ©동이

이미 우리보다 먼저 모판에 파종한 어르신네 서리태는 웃자란데다 파종시기를 놓쳐 모판에 죽어있습니다. 하도 가물어서 밭에 옮겨심어도 죽을 것같아 고생하느니 차라리 버리자! 하신듯합니다. 물을 떠다 심는다 해도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죽기 십상이니까요. 우기에 맞춰 콩 모종을 내는 게 지혜인데, 올핸 우기랄 것도 없이 가뭄이 지속된 겁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잘해봐야 별무 소용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농사의 진리입니다. 농사 전문가인 어르신조차 눈물을 머금고 서리태를 마당에 팽개치신 게 분명했습니다.

말라 죽어버린 서리태 모종을 보며 상대적으로 쌩쌩한 메주콩 모판을 들고 나오기 좀 미안했습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콩밭 상태를 보니 비가 그런대로 와 물 안주고 심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당일 저녁 비 예보도 있고 해서 무리해서라도 심어버리는 게 낫겠다... 파종하면서 만일의 경우(비가 오지 않을 경우)를 감안해 잔뿌리가 깊이 박히게 심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통 우기에 한두시간이면 할 일이 4시간 가까이나 걸립니다.

이러한 노력과 정성(?)에 하늘이 감복했는지 파종 중에 날이 흐리고 파종을 마치자 보슬보슬 빗방울까지 내립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뭐 하느님이 산골짝 콩밭까지 다 보실 수야 없으시겠지만 그날은 운좋게 잠깐 보신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파종시간에 맞춰 비까지 내려 보내실 수 있을까? 이런 가당치 않은(?) 생각까지 들었던 겁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속으로 말씀 올렸습니다.(참고로 동이는 종교가 없습니다)
일을 마치려는 데 어르신이 팥밭에 씨뿌리고 콩밭 옆으로 지나가십니다.

“콩 다 숨겄는가? 잘 숨겄네...”(어르신은 아랫지방 출신이셔서 ‘심는다’는 표현을 ‘숨는다’로 발음하심)
“네...비가 왔으니 모종이 살겠죠?”
“그렇게 숨그면 100% 살아뿔 지~~~~”
“아! 예~~~ 그나저나 여기 고라니가 내려오던데 콩잎은 안 따먹나 모르겠네요?”
“왜 안 따묵어? 다 따묵지…”(어르신, ‘먹다’도 ‘묵다’로 발음하심)
“네???...”

고라니에 대비해 지지대를 박아 비닐줄 경계를 침(왼쪽),심기 전에 콩 모종에 먼저 물을 주는 게 좋습니다. ©동이

큰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밭 여기저기에 고라니 똥이 새카맣게 나뒹구는 곳인데... 콩알로 심으면 비둘기가 다 파먹는다고 해서 모종으로 낸 건데, 모종은 또 고라니 밥이라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르신한데 여쭤봅니다.

“비닐 줄 치면 고라니가 못들어 온다던데 비닐 좀 칠까요?”
“좀 쳐~~~ 뽈대 한 20개 박고 줄 4칸 쳐 부러~ 그라믄 괜찮을 겨~~”

그렇지 않아도 고라니는 줄치면 잘 안들어온다고 귀동냥한 게 있어 파종 끝내고 끈을 사야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일이 잘 풀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르신네서 '폴대' 빌리고 고추대용 비닐끈까지 공수해서 네줄 울타리를 쳤습니다.

‘고라니 못들어오겠지 ㅎㅎ’
그렇게 하고 돌아왔습니다. 휴~~~~~~
돌아오는 길에 때맞춰 빗줄기가 거세져 한숨 돌렸습니다. 콩밭에 고라니 안들어가고 잘 자라야 할텐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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