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여기저기 다닌다는 것은 이 애기 저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처럼 ‘여행자’의 이름을 앞세워 길 위를 떠도는 사람은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는 흘려보내고 말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내용도 많습니다.

충남 어느 도시의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깥노인 세 분이 식사 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더니, 그 중 한 분이 ‘은밀’을 가장해서, 사실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거시기, 그 말 들었어?”
“무슨 말?”
“홍준표가 문 닫게 한 도립병원인가 의료원인가 하는 걸 문재인이 다시 살린다잖여.”
“엥? 그게 무슨 미친 짓이여? 밑 빠진 독이라는디… 그게 국민 세금 퍼붓는 거 아녀?”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잖여.”
“돈이 썩어나나? 그걸 다시 살리게….”

폐쇄된 진주의료원을 소재로 한 노인들의 대화는 그쯤에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별 내용도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왕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폐업시킨 의료원을 지금 와서 다시 살린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듣는 제 가슴은 왜 그리 답답했을까요.

서울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문제가 정말 노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흥분할 일일까요? 지역 의료원의 부활이야말로 저소득층이나 질병에 취약한 노인들이 먼저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병원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대상이 노인들일 테니까요. 1910년에 개원해서 100년 이상 지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진주의료원이야 말로 그런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압니다. 연간 30만 명, 저소득‧의료보험 환자만 3만 명씩 수용했다고 하지요.

이쯤에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잘못 입력된 정보에 의한 ‘무조건적 반대’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면서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내세운 대표적인 이유는 연간 40~60억 원에 달하는 손실과 강성노조였습니다. 문제는 이유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경영정상화 노력보다는 ‘손쉬운’ 폐쇄를 선택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일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 병원의 존폐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공급자뿐 아니라 수요자의 논리도 따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즉, 진주의료원이 경남서부 도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거점 병원’이라는 사실이 판단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코 수익의 논리로만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도민들에게 진주의료원은 ‘믿을 만한 좋은 병원’이었습니다. 장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폐쇄는 큰 상실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진주의료원 폐쇄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나 부활을 촉구하기 위한 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의 본질은, 진주의료원의 부활 논의가 ‘미친 짓’이라고 폄하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누구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일 테니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날 먹은 점심이 얹힐 정도로 답답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뒤 들려온 짧은 뉴스 하나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습니다. ‘자유한국당 해체를 바라는 대구 시민들’의 집회 첫 날, 75세의 한 노인이 평생 처음 피켓 시위에 나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먼저 오해가 없으면 하는 게, 제 이야기의 방점이 ‘자유한국당 해체’가 아니라 ‘노인’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의 논리로 쓰는 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뉴스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왕성랑이란 성함을 가진 노인이 지난 22일 있었던 ‘자유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에 직접 참여했는데요. 페이스북에서 시위 소식을 듣고 딸에게 피켓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서 시위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그날 노인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1시간 넘게 시위를 했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시위 자체보다는 이 어른이 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분은 그날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친구들도 막말, 막가파 행동을 보며 혀를 찬다. 저건 보수가 아니라 패륜이다. 정신을 못 차렸다. 인간적 냄새나는 보수를 바라며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또 "개혁을 막는 세력은 짐승처럼 달려드는데 양심적 시민들은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면서 "나 같은 소시민이 뭐라도 해야 정의로운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고 하지요. ‘정의로운 나라’ 앞에 이념이나 진영이 개입할 틈은 없어 보입니다. 말 그대로 이 나라에 사는 한 어른의 ‘나라 걱정’이지요.

이제 오늘의 편지를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을 가리고 싶어 쓴 글은 아닙니다. 나라가 바뀌려면 국민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노인들이 시각이 바뀌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어른들이 먼저 현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지혜를 나라에 보태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닫힌 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는 그 어른들의 자식들이, 그리고 그 자식들이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나라니까요.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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