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따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에서 지휘관 당번병을 따까리라고 불렀고 군용 반합의 뚜껑도 따까리라 했습니다. 고참들이 후임들 군기잡을 때도 “한 따까리 해볼래?”라며 따까리를 들먹였죠.

따까리라는 용어가 군에서 이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따까리가 지칭하는 대상 또한 제각각이라는 걸 알기까지도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대장 따까리는 온갖 시중을 드는 병사를 말합니다. 주로 하는 일이 ‘쓸고 딱는다’고 해서 따까리라 한 게 아닌가 합니다. 주로 관사에서 밥하고 설거지했으니까요. 지휘관 군화도 반짝반짝 닦아야 했습니다.

영화 ‘친구’(감독 곽경택)에 “내는 뭔데? 내는 니 시다바리가?”란 대사가 나옵니다. 이를 차용해 “내가 니 따까리가?”란 말도 한때 유행했지요. 시다바리(일본어)는 ‘일하는 사람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이죠. 따까리가 충직하다는 뜻의 투르크어인 ‘도그리’(dogrhi)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

야전 밥그릇이라 할 군용반합의 뚜껑도 따까리라 했습니다. 뚜껑의 방언으로 뚜껑>뚜거리>따까리로 진화된 듯하죠. 7080 군(軍)세대 농담 중에 “고참은 반합 따까리에 똥을 싸도 작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고참이 ‘하늘같은 존재’라는 걸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대장 위에 병장있다’고 했으니까요.

군에서 ‘가장 무서운 따까리’는 기합입니다. 내무반 고참이 “요새 왜들 이 모양이야? 한 따까리 해볼까?”하면 초비상 걸렸습니다. 이 말은 후임들 하는 것이 마음에 영 안 든다는 뜻이며, 경우에 따라 집합시켜 ‘빠다’(매) 좀 치겠다는 얘기입니다. 요즘에야 내무반 구타가 없어졌겠지만 7080세대 군시절만해도 거의 주기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고참이 “한따까리 할까?”하면 그때부터 불안해지고 언제 집합시키나? 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죠. 차라리 집합해서 맞는 게 맘 편하고 잠도 잘 왔으니까요. 고참들로선 따까리란 표현이 내무생활을 통제하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던 겁니다.

얼차려를 의미하는 따까리는 앞서의 따까리(당번병, 반합뚜껑)와는 말뿌리가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만주어 다굴(Daghur)은 동맹, 제휴를 뜻한다. 흔히 우리는 집단 따돌림이나 집단 구타를 ‘다굴’당한다거나 ‘다구리’친다고 한다. 이 다굴, 다구리에서 온 말이 아닐까? 연합 동맹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것…” 한 네티즌의 말뿌리 추정입니다.

푸닥거리에서 온 말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무당이 하는 굿으로 부정이나 살을 푸는 푸닥거리가 있다. ‘한 따까리’는 ‘한 푸닥거리’를 편의로 줄여 붙인 말인듯하다.”(낱말의 습격/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푸닥거리는 무당이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잡귀를 풀어 먹이는 굿이다. 푸닥은 풀다(解)와 닦다(淨化)의 ‘풀닦’이 푸닥이 되고 ‘거리’가 합쳐진 것이다. 잡귀에게 음식을 차려 먹이고 풀어서 깨끗이 닦아내다의 뜻”(국어어원연구/서정범)

군 인권센터가 얼마전 “모 장성이 공관병에게 사적인 일을 시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며 보직해임을 촉구했습니다. 센터가 전역병 등을 상대로 조사해 밝힌 해당 장성의 비위행위는 이렇습니다.

“자정께 술상 차리게 하고 간부들과 술마시던 중 자신의 질문에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다며 공관병의 뺨을 때림. 공관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자 얼어죽게 생겼다며 공관병을 향해 폭언, 본인의 경영대학원 진학과 관련해 지휘관실 근무병에게 영어지문 해석과 자료조사를 시킴. 공관 내 텃밭과 30여개 되는 난 관리를 지시. 사적인 일에 관용차 몰도록 하고 폭행도 자주. 담배를 피울 때 전속 부관에게 재떨이를 들고 옆에 서있게 함. 사무실에서 부관에게 ‘공관 가서 사복을 가져오라’고 한 뒤 가져온 옷이 마음에 들 때까지 3~4회 지시를 반복”
공관병들을 그 옛날 따까리 다루듯 한 겁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청년들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 복무를 하러 갔지, 사노비 생활을 하려고 젊음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며 공관병과 개인 운전병 제도의 즉각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예전에도 지휘관들이 따까리 사병에게 아이들 과외공부맡기고 사적인 일 많이 시켰습니다. 종부리듯 했지요.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악습은 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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