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도둑비 내릴 때가 있다. 한밤 중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잠시 왔다가는 비라서 도둑비라고 한다. 기묘하게도 난 도둑비가 내리는 날 잘 깨어난다. 다른 소리는 신경도 안 쓰면서 빗소리에만 유독 예민하다. 단순히 비를 좋아해서 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고요히 도둑비가 내릴 것 같은 날에는 편지를 쓰고 싶어져 그럴 것이다. 수신인은 없다. 그러나 가장 구구절절한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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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상대방에 대한 서툰 안부인사로 운을 떼고선 나의 어정쩡한 근황을 설명한다. 내용이 구질구질해보여서 한밤중에 써야한다. 이뤄질리 만무한 욕심을 털어놓고, 터무니없는 바람을 속삭인다. 슬픔을 잔뜩 머금은 내용만 그득해서 마치 떠나간 애인에게 전하는 후회를 압축시켜놓은 듯하다.

편지는 수신인이 없지만 발신되지도 않는다.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 썼다 다시 지워지거나 혹은 머릿속에 내용을 적는다. 잠시 왔다 자취를 감추는 도둑비처럼, 내 속을 축축하게 적셔놓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매사를 긍정으로 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불안함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무기력에 학습된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방안에 켜켜이 쌓여있다가 도둑비 내리는 날 한꺼번에 흘러내린다. 때맞춰 토해내지 못한 울분들이 편지가 되어 내게로 왔다 간다.

구질구질한 편지를 썼다 지우고 나면 다음날은 개운하다. 비 갠 하늘처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비루한 편지를 쓰는 까닭은 묵은 것들을 내려놓고 좀 더 가벼워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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