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필자의 중요 일과 가운데 하나가 산책이다. 매일 만 보 이상 걷는다는 원칙이 벌써 여러 해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길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개미들의 생태다. 지난 5월 어느 날 저녁 나는 휴대폰에 이런 메모를 남겨 놓았다. “개미의 사회생활을 갖고 글 하나 써 볼 만하다. 이 어두운 시간 가로등 아래서 보니 개미떼가 새까맣게 모여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자전거 바퀴에 짓밟힐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볼 용기와 끈기가 없어 그냥 갈 길을 갔다.”

©픽사베이

개미에 대한 내 처음 궁금증은 이런 것이었다. 개미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는 걸까. 저렇게 자기들 목숨을 괘념치 않고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이다. 그런데 유독 개미에게는 그게 없는 것 같다. 혹시 그 이유가 개미가 ‘사회적 곤충’이라서 일까. 이것도 명쾌한 설명이라 할 수 없다. 대표적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등 동물이고 개미는 하등 동물이라 선가.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개미 박사’로 알려진 최재천 교수나 베스트셀러 소설 ‘개미’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얼마나 알아냈을까.

최 교수는 ‘개미제국의 발견’이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개미 군락은 각기 살아서 움직이는 여러 개미들로 구성된 집단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 몸과 같다.” 그는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런 개체를 ‘초개체(superorganism)’라 부른다고 했다. 초개체란 관점에서 보면 일개미들은 각각의 생명체임에는 틀림없으나 엄밀히 따지면 여왕개미나 수개미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기계설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계설비란 개념을 갖고 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하다.

어려서부터 해온 개미 관찰을 토대로 ‘개미’를 쓴 베르베르의 설명은 더욱 구체적이다. “개미에게 고통이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공상과학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고,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개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개미 사회의 응집력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최 교수와 통하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이론을 반박한다.

“그러나 개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목이 잘린 개미는 특별한 냄새를 발한다. 고통의 냄새인 것이다. 개미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냄새가 생길 리 없다. 개미는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 고통을 느낀다.”

베르베르는 개미들의 역할 분담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개미를 관찰해 보면, 저 자신의 생존의 요구가 아니라 외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째서 그런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겸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그리 대단한 사건이 못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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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궁금증은 개미들끼리 의사소통하는 방법이다. 개미떼는 어떻게 먹잇감 앞에 새까맣게 모여들 수 있는가. ‘화학 언어’를 주고받음으로써 이다. 먹이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는 배의 끝부분을 땅에 끌며 기어간다. 최 교수는 이것이 ‘냄새길’을 그리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일개미들도 곧바로 냄새길을 따라 먹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이 냄새길을 그릴 때 쓰는 체외 분비 화학물질이 바로 페로몬이다. 그건 체액으로 된 문장이며 말이다.

페로몬 종류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개미 몸속에는 머리끝부터 배 끝까지 온갖 크고 작은 화학공장이 있다. 또 이 페로몬을 감지해내는 후각도 잘 발달돼 있다. 소설 ‘개미’의 낱말풀이에 따르면 비생식 개미는 더듬이마다 후각 세포가 6500개이며 생식 개미는 30만개나 된다.

베르베르는 “어느 날 외계인들이 지구 행성이 도착한다면, 개미들과 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개미들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라고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만큼 개미들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인간 수준의 사회성을 지닌 존재다. 필시 그 사회성 때문일 터인데, 악도 있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유혈전쟁에 대량학살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 개미와 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이들 개미 사회에선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300만년의 인류 역사보다 훨씬 긴 1억년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초개체’ 전통 때문이다. 초개체가 까다로우면 공동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개미는 한자로 蟻(의)라고 쓴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의로운 벌레란 뜻이라고 한다. 최 교수는 “중국 사람들이 그 옛날 이미 개미들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썼다.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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