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전송]

숫자 1!
가장 적은 수이면서 가장 큰 기대를 하게 하는 수.
가장 외로운 수이면서 가장 확장성이 강한 수.
가장 단순한 수이면서 가장 오지의 미로 같은 수.
그 숫자 1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

©픽사베이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자신의 심장처럼 살아 있음의 증표가 되고 존재의 확신이 된 세상이다.

이미 오래 전 ‘손전화’라는 신기한 물건이 주어지면서 처음엔 사람들의 목소리로 거리는 붕붕 날아올랐다. 어느 거리 어느 장소에서도 발신과 수신이 가능하며 더구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이 기계를 사람들은 혹 잃어버릴세라 색색의 줄에 매달아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상대를 호출할 수 있고 역시 그 대가로 자신도 상대에게 묶여야 하는 손전화.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달려간 마음으로 전신에 열꽃이 피던 희열 대신, 궁금증과 그리움을 줄이고 사유와 상상의 시간을 빼앗는 푸석함으로 세상의 온도를 낮췄다.

상대 목소리의 질감이나 간간이 섞이는 숨소리에 온 촉각을 세우며 다음 말을 준비하는 먹먹하도록 벅찬 순간은 그렇게 전설이 되어 갔다.

그러다 목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 갔다. 대신 글자로 서로를 읽기 시작했다. 한 자 한 자마다 풍경과 그 풍경을 따라 오는 사람을 맞이하듯 진정을 담아 써 보내는 ‘손 편지’를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백 년 전 세상에서 잘못 떨어진 유성과도 같다. 손 편지는 글이다. 하지만 나는 글자를 말하고 있다. ‘문자’가 도래한 것이다.

‘마음’이란 거대한 울림통을 지나 오직 한 사람에게 역시 그의 오직 한 사람이 전하고 싶은 말은 온도를 가지는 법이다. ‘글자 보내기’에 매료된 사람들의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여름에서 가을을 잊고 바로 겨울이 되어 갔다.

몇 날 며칠을 목소리 한 번 안 듣고도 짧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우리 사이는 변함없다’고 안심하며 평안을 보장 받은 연인들. 만남의 약속도, 잘 자라는 인사도, 보고 싶다는 사랑의 말도, 따끈한 목소리가 아닌 글자로 읽으며 서로에게 눈사람이 되어 간 연인들이 줄줄이 물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문자는 수신자의 확인 유무를 그에게서 회신이 오지 않는 한 발신자가 알 수 없다. 때문에 발신자는 몸과 마음에 늘 여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여진을 혹자는 애틋함이라 불렀고 혹자는 마음을 당기는 자력 운운하기도 했다.

©픽사베이

그리고 나타난 카톡!
전대미문의 이 소통 방식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즉각적인 의사 교환이 가능한 건 물론이고 문자와 달리 상대의 확인유무까지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그래서 일체의 궁금증과 함께 상상이 폭을 넓히는 고행의 시간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주는, 이 단순 명쾌한 기능에 사람들은 기꺼이 순종한다. 당연히 애틋함과 마음을 당기는 자력이 저만치서 등을 보이고 역사 속으로 멀어져 간다.

카톡!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
한꺼번에 피어나는 봄꽃 같은 울렁임으로 나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소리.
혼자 있던 세상이 그 소리 하나로 ‘너’도 불러오고, ‘우리’도 만들며, 계속되는 수만큼 세상을 긴 탯줄로 엮는 소리.
백 마디 소리쳐 부르는 절규보다 단 이음절뿐인 이 소리가 더 신속하게 고개를 돌려 그 진원지로 달려가게 한다.

카톡!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 누군가의 당도를 알리는 소리, 누군가의 마음이 건너오는 소리.
대부분 반갑고 더러는 고맙고 또 드물게는 구급대 사이렌처럼 진저리를 치게도 하는 소리.

카톡!
소리를 듣고 확인하는 순간 발신자에게 수신자의 현재를 들키는 소리.
전송과 동시에 자신이 띄운 카톡 창 옆에 떠오르는 숫자 1을 상대 마음의 문패처럼 만나는 발신자.
문패 앞에서 초조하게 제자리를 맴도는 발신자의 시간.
숫자 1이 사라진다.
‘당신을 읽었다’ 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수신자의 현재가 그에게 보여 지고 만다.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신자는 아직 개봉 전이고 문패는 더 완강하게 벽의 두께를 늘린다.

오늘. 천 년쯤 오래된 옛 기억을 두드리며 모음도 자음도 낯선 옛 장소의 사람이 카톡으로 내 앞에 선다.

‘잘 지내는지... 비가...’ 스마트폰 창에 뜬 카톡 알람에 눈과 손이 동시에 ‘그곳’을 향한 출발 라인에 선다. 하지만 긴 시간 이미 그 줄기가 길어진 저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버튼을 눌러 남은 말을 읽지 않는다. 그의 창엔 숫자 1이 완고한 수문장처럼 서 있으리라.

©픽사베이

숫자 1!
가장 적고
가장 외로우며
가장 단순한 수.

언젠가 내 카톡 창에서 내가 보낸 카톡 앞에 지워지지 않은 채로 서 있는 이 숫자를 만난다면 짧게 한 줄 더 써 보내리라.

그 마음 읽혀져 나 이제 가볍다고!

세상이 자꾸 얇아진다.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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