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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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시인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결과론적 ‘정적 상태(狀態)’가 아니다. 어느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멈출 수 없는 언어 표현의 욕구가 극에 달해 눈만 감으면 몸서리치게 종이에 손이 가고, 컴퓨터 자판에 눈길이 가는 찰나들이 모여 만들어낸 ‘동적 상황(狀況)’이다.

​그래서 시적 순간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시가 날 선택했고, 나는 거부할 수 없기에 오늘도 ‘빛나는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닌다. (*빛나는 그림자: 초현실주의 대표적인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가 표현한 ‘특별한 순간’)

그래서 다시 제목을 바꾸어본다. ‘나는 왜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몇 자 적어본다.

돌아가는 선풍기를 멈출 수 없었다.
빠르게 휘감고 있었고, 다가갈수록 눈이 찌푸려졌다.
경계하는 것인가.

더위를 식혀주었다.
하지만 이내 질려버렸다. 아니 기분이 안좋아졌다.
사실, 내가 경계하는 것인가.

어느 날, 에어컨이라는 로봇이 등장했다.
선풍기는 시끄럽기만 했다
그 날부터 빛바랜 창고에서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의심하고, 경계하고, 버릴 것인가.
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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