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남녀노소가 바지나 치마를 걷어 올리고 물 위를 걸어 운하를 건넌다.(뮌스터)
도심 광장에 그리스 신전 형태로 각양각색 책을 쌓아 올린다.(카셀)
전시 공간에서 공연장처럼 퍼포먼스와 연주회를 펼친다.(베니스)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뮌스터와 카셀은 2017년 여름 세계 미술인의 순례지, ‘그랜드 투어’의 명소다. 격년제 현대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5월 13일~11월 26일)를 비롯, 각기 5, 10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6월 10일~9월 17일)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6월 10일~10월 1일)가 올해 동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세 행사를 한꺼번에 관람하려면 2027년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카셀 도큐멘타의 대표작. 도심 광장에 금서를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처럼 쌓아올린 마르타 미뉴힌의 ‘책의 신전’. ©신세미

올해 57회째인 베니스비엔날레는 기획전 외에 국가관을 운영해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우는 격년제 시상 행사. 한편 1955년 이후 5년 주기로 열리는 14회 카셀 도큐멘타가 실내 기획전 위주라면, 1977년 시작해 올해 5회 뮌스터 행사는 공원, 숲, 호수, 건물 안팎 등지에 작품을 설치하는 야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세계 최고 권위의 세 미술행사를 지난달 미술관계자 10여명과 함께 참관했다. 세 도시에서 경험한 현대미술은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친숙한 일상의 공간과 소재를 활용하고, 관객 참여형 혹은 다른 장르와 어우러지며 일상 속의 미술을 체험케 했다.

뮌스터 운하의 바닥에 컨테이너를 가라앉힌 터키 작가 아이셰 에르크멘의 작품. 사람들이 그 위로 물 위를 걸어다닌다. ©신세미

올해 뮌스터의 화제작은 남쪽 운하의 바닥 일부에 철제 컨테이너를 깐 터키 작가 아이셰 에르크멘의 ‘물 위에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강가에서 물놀이하듯 맨발로 오리 떼가 노니는 운하의 양끝을 오가며 일상의 현대미술을 즐겼다. 뮌스터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올해 19개국 작가 35개팀이 발표한 신작 외에 브루스 나우만의 역 피라미드 형태 작품처럼 1977년이후 출품작중 상설 설치작까지 70여점.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체코슬로바키아관의 ‘백조의 노래’. ©신세미

뮌스터 프로젝트는 출발부터 공공미술에 초점이 맞춰졌다. 1975년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추상조각이 뮌스터에 처음 선보였을 때 주민들이 반발했고 이에 주민과 교감하는 공공미술을 주목한 카스퍼 쾨니히 전 쾰른 루드비히미술관장 등의 주도로 조각 프로젝트가 시작됐던 것.

관람객들이 뮌스터 구석구석의 공공미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전거도 빌려준다. ©신세미

세계 각지서 몰려든 참관객들은 출품작 정보가 담긴 지도와 휴대폰 앱을 가이드삼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도시의 곳곳을 훑었다. ‘자전거 도시’답게 곳곳의 설치작을 덜 걷고도 둘러볼 수 있도록 자전거 대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변두리 옛 아이스링크 건물, 2차 대전때 부서진 옛 극장 건물 주변에도 프랑스, 인도 작가그룹의 작품이 설치됐다. 엘베엘(LWL)미술관 부근 건물 벽면에 붙어 있는 안드레아스 분테의 포스터 작품은 포스터 속 QR코드에 스마트폰을 대면 영상이 읽힌다.

또 다른 독일 도시 카셀에선 지금 도심 프리드리히 광장에 아르헨티나작가 마르타 미뉴힌의 ‘책의 신전’이 들어섰다. 괴테, 카프카의 저서부터 ‘닥터 지바고’, ‘안네 프랑크의 일기’ 등 금서 10만권을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의 형태로 쌓아올린 작품이다.

©신세미

바로 옆에 위치한 주 전시장인 프리데리시아눔미술관 꼭대기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는 로마 출신 작가 다이넬 노어의 ‘날숨 운동’이다. 새 교황의 탄생을 알리는 가톨릭의 콘클라베와 1933년 베를린서 일어난 나치의 분서갱유를 은유하는 도큐멘타 개막의 상징이다.

1955년 출범후 급진적 사회정치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며 미술사의 기록을 중시해온 카셀도큐멘타는 올해엔 아테네서도 열린다. 총감독인 폴란드 출신 기획자 아담 심칙은 ‘아테네에서 배우기’란 주제아래 카셀의 기본 정신을 잇는 한편, 서양 고전의 뿌리이면서 오늘날 경제적 변방이 된 그리스의 위상과 더불어 유럽 이야기를 시도한다.

비엔날레기간 중 베니스의 두 대형 전시장서 열리는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 작품. ©신세미

프리데리시아눔미술관 외에 시내 각종 전시 공간뿐아니라 중앙역, 인근의 지하 전철역도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카셀 중앙역 광장에 설치된 조너던 브로프스키의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의 작가다. ©신세미

한편 크리스틴 마셀 프랑스 퐁피두센터 수석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은 올 베니스비엔날레에선 배우들이 유리 바닥 위-아래에서 퍼포먼스하는 독일관의 안네 임호프 작품 ‘파우스트’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외관을 휘황찬란한 카지노 간판처럼 꾸민 한국관은 이대형 기획으로 코디최, 이완 작가가 출품했다.

예술의 길에대해 묻는 존 월터즈의 팔레트 형태 작품. ©신세미

올해 베니스에선 비엔날레 못지않게 데미언 허스트의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전이 750여억원을 들인 별난 기획과 엄청난 규모로 눈길을 끌고 있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여럿 보유한 프랑스와 피노 PPR 그룹 회장 소유의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현대미술의 악동’ 허스트는 해저 난파선의 보물 발굴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시도, 허구를 실제처럼 재현한 대규모 작품을 공개했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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