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구성과 함께 언론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2008년 1월 12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인수위가 문화관광부에 공문을 보내 언론사 간부진은 물론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고주, 산하 단체장 등 광범위한 대상을 조사대상에 포함하도록 지시했다”며 단독 입수한 정부 공문서를 공개했다. 인적 장악을 위한 준비였다.

그해 3월, 이명박 대통령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의 멘토라 불렸던 최측근 최시중을 언론의 독립성 보장에 앞장서야 할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시민사회·언론단체들은 절대불가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던 터였다. 최시중은 공영방송 장악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공영방송 인적장악부터 시작한 언론장악 시나리오

KBS에서는 정연주 사장을 퇴출시키고, 이병순을 거쳐 이명박 캠프 언론특보 출신 김인규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YTN에는 역시 이명박 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 곧이어 배석규 사장을 임명했다. MBC에서는 엄기영 사장을 자진 사퇴시키고, 김재철 사장을 임명했다. 신동아 2010년 4월호에 실린 김우룡 MBC 방문진 이사장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 정리”했고, 김 사장의 역할은 “(MBC) 좌파 청소부”였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에는 박정찬 사장을 앉혔다.

2008년 KBS·YTN, 2010년 MBC, 2012년 언론노조가 파업 등을 통해 부당한 언론장악에 저항했다. 여기에 참여했던 언론인들은 가차 없이 해고와 징계로 언론 현장에서 쫒겨나고 필봉을 빼앗겼다. 2012년 당시 부당징계를 받은 언론인은 21명 해고를 포함해서 450명이 넘었다.

탈법적인 경로로 또한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를 통해 이루어진 공영방송사 사장 교체는 비판적인 언론인 축출과 간부 교체를 통한 인적 장악으로 이어졌고, 상명하달식 통제 시스템을 방송사 내부에 부활시켰다. 이어 정부 비판 프로그램 폐지, 정권홍보 프로그램 신설, 친정부적 여론몰이와 종북 프레이밍 보도 등이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론지형 구조 변화를 겨냥한 신문·방송 겸영허용

언론 장악은 이에서 끝나지 않았다. 최시중 위원장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는 여론지형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시도했다. 시청·청취·구독률 면에서 제도권 언론지형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87년 이후 우리나라 여론지형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에 기반한 비제도권 시민공론장의 활성화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수구보수 제도권 언론의 압도적 우위를 통해 여론지형의 균형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고 신규 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방송관련법 개악을 강행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고, 야당은 여대야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 통과를 막겠다고 나섰다.

©픽사베이

“위조지폐는 맞는데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미디어 관련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고 질서유지권도 발동한 가운데 사회권을 한나라당 이윤성 부의장에게 넘겼다. 의장석을 뺏기 위한 위한 여야의원들의 대치와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신문법 개정안이 재적 163, 찬성 152로 가결되었다. 그런데 이어 실시된 방송법 개정안 투표에서 재적 145, 찬성 142로 재적의원 수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이윤성 부의장은 재투표를 실시, 재적 153, 찬성 150으로 가결을 선언했다.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대리투표를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재투표, 대리투표는 민주주의 표결 프로세스를 완벽히 무시한 것으로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기한 미디어법 위헌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다가 재투표에 붙인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지만, 방송법안 가결 선포행위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판결에 대해 패러디가 난무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위조지폐는 맞는데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라는 말로 비꼬았고, 네티즌들은 ‘대리시험은 위법이지만 합격은 인정한다’, ‘도둑질은 위법이지만 장물은 합법이다’라는 뜻이냐고 항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정된 미디어법을 기반으로 조선·중아·동아·매경의 종편TV 진출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 언론지형은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탄압

이런 언론지형으로 인한 여론지형의 불균형에 그나마 균형을 잡아주던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조치도 병행되었다. 미네르바 구속을 필두로 인터넷 공간에 비판적인 의견을 올린 네티즌들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광범한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심의를 빙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유사검열, 사이버 모욕죄 도입, 당사자가 아닌 제3자라도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 제기가 가능하도록 한 조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등 인터넷 공론장을 위축시키려는 각종 악법 추진이 그것이다.

©픽사베이

‘검열기구’로 전락한 방통심의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기구가 아니라 검열기구로 전락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방통심의위는 여야 6:3 구도였다. <PD수첩> 광우병 보도, YTN의 이른바 ‘블랙투쟁’, KBS <추적60분> 천안함 보도 등에 대해 6:3 또는 정부여당 추천위원들만의 의결로 징계를 의결했다. 표적심의, 청부심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일선 제작진의 자기검열 내면화로 이어졌다.

공영방송사의 사장 교체와 간부교체 및 비판적 언론인의 해고·징계 등의 인적장악,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언론지형, 심의기구의 검열기구화,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탄압 등을 통해 언론장악이 이루어지자 방송저널리즘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광우병 보도 탄압부터 용산 참사 축소왜곡 보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보도 통제, 4대강 사업 관련 보도 왜곡, 세월호 보도 참사, 메르스 보도 통제, 선거 때만 되면 남발되는 북한 관련 보도, 사드 관련 내부적 보도지침 적용 등에서 보듯이 제도권 저널리즘은 이미 붕괴되었다. 정권이 바뀐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언론은 변하지 않고 있다.

9년 적폐청산, 급하지만 차근차근하고 확실하게

9년간의 언론적폐가 구석구석 깊이 쌓였다. 치밀하면서도 끈질긴 언론 탄압의 결과물이다. 이를 청산하고 정상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급하지만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일이다. 과거처럼 탈법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로운 방통위원장 내정이 발표되었다. 조만간 방통위원회와 방통심의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공영방송사의 인적 쇄신이 질서정연하고 확고하게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문제를 포함하여 건강한 언론지형 또는 미디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민적 논의체 구성도 필요할 것이다.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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