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까지 이르는 명물 길이 생겼다. 호기심과 관심 집중이던 서울로7017이 개장한 것이다. 벌써 한 달간 2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초기 효과겠지만 여름철을 감안하면 꽤 많다. 서울시는 차길에서 사람 길로 변한다고 홍보하며 로고에는 SEOULLO의 LL을 사람의 두 다리로 귀엽게 형상화했다. ‘전 구간에 걸쳐 645개의 콘크리트 원형화분에 228종 24,000그루의 수목이…’라는 만큼 한국 최초 도심 공중 수목원 길이기도 하다.

©서울시, Ossip_van_Duivenbode

‘서울로 10리 문화길’도 기대해본다

서울로7017 프로젝트는 두 개의 선배 사례가 있다. 하나는 하이 라인(High Line) 파크로 뉴욕 시에 있는 길이 1.6km 공원이다.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사이드에서 운행되었던 고가 화물열차 폐 노선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 등을 설치해서 공원으로 재탄생한 장소이다. 세월이 지나니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 자연스럽고 공원에서 보이는 허드슨 강과 뉴욕시의 모습이 뉴요커들에게는 휴식과 산책로, 외지 관광객들에게는 뉴욕을 바라보는 관광명소이다. 이 공원의 선배는 프랑스에 있다. 1993년 개장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 식물 산책길)공원이다.

서울로 7017 디자인도 이 공원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용도폐기 된 공중길 재활용이라는 취지, 식목 식재와 문화의 길, 차에서 사람 중심 등. 이 서울로는 암스테르담 기반의 건축가 집단인 MVRDV(3인 창업자 이름의 약자로 구성)가 설계했다. 단순한 밀도를 뛰어 넘어, 2D의 도시에서 3D의 도시로 나아가자는 제안을 하는 등 세상에 대한 건축가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는 그룹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서울로가 대단한 기술이나 조형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리스크가 있는 최초 시도도 아닌데 굳이 외국건축회사에 의뢰를 했는지는 좀 의문이다. 한국 건축회사가 했다면 나중에 이 모델을 수출할 길도 열렸을 텐데.

이 길에 대해서는 개장 후 ‘신발 조형물’로부터 시작된 악평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예찬론 등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뭐, 남대문 상인들 기대에 못 미친다, 길이 삭막하다, 식물들이 벌써 시들고 있다 등등 문제도 있지만 기왕 좋은 취지로 만든 건데 현상문제만 보지 말고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밤에는 연인(혹시 아나. 여기가 프로포즈의 명소가 될지!)이나 가족들끼리 오면 꽤 볼만한 야경 플레이스도 될 것 같고 숙명여대 입구에서 구 서울역 미술관, 이 길 그리고 남대문시장과 인사동까지 연결하면 통 크게 ‘서울로 10리 문화 길’ 거리가 나올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쯤이야...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데.  

©서울시, Ossip_van_Duivenbode

청계천에서 만날래, 서울로에서 만날래

내 길 체험을 말해봐야겠다. 나는 경기도 살지만 관심이 많았고 길 개장행사 대행사 선정 심사도 했던 터였다. 6월말 5시 무렵. 서울역에서 내려 인사동 가는 지하철로 환승하려다가 시간이 남아 지상으로 올라갔다. 노숙자들과 악을 쓰는 시위꾼들을 보면서 문화서울역 284 옆 수직계단통로를 타고 남대문시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예전에 차로 쌩쌩 다니던 숨 막히던 산업의 길이었다. 그 길을 내 두 발로 타박타박 걸을 수 있다니, 무협지 버전으로 상상을 하면 나는 공중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그 시간 공원을 찾은 사람은 적당했다. 원형벤치에도 앉아보고 다양한 식물들도 살펴보고 사람들 표정도 보면서 사진도 찰칵, 찰칵. 공원 아래 주변을 내려 보았는데 차만 씽씽, 볼 것 없는 무개성 빌딩들이라 기대보다 볼 건 없었다(밤이라면 혹시 달라질 수도! 최소 연 천만명은 올 텐데 주변 빌딩 관리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공원카페에도 들어가 보고 인근 건물과 연결된 다리를 지나 고디바 초콜릿 샵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안내소를 들르고는 남대문 시장을 통과해 시장분위기를 보고는 인사동까지 걸어갔다. 2.5km쯤. 다리가 살짝 뻐근, 땀은 생각보다는 덜.

중간에 지인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서울로 7017 벙개, 다음 주 목요일 6시 반. 술은 유커 없는 남대문 재래시장에서 막걸리. 오케이?’ 바로 답톡이 왔다. “와우 가고 싶었는데.”, “거기 어때요?”... 댓톡을 올렸다. “좀 삭막한데 그래도 멋짐. 주변 건물 근무자들에게는 복이겠는데 흠 식물들 관리비는 꽤 들겠는데요. 가뭄 한국이라. 좀 지켜봐야지요.” 바로 댓톡이 떴다. 먼저 가본 분인 모양이다. “동감. 생각보다 삭막. 시멘트 바닥에 더위나 비를 피할 곳도 없고. 뭔가 조치가 필요.”

나는 이어 페북에도 올렸다. 그랬더니 서울 페친들은 별로 댓글이 없고 오히려 지방 문화기획자들이 “와, 거기서 마임 공연해요”, “와, 서울이 역시”한다. 그때 퍼뜩 들었던 생각이 ‘이 길을 만일 8도로(8道路)로 했으면? 길을 8개 구간으로 나눠 8도 나무와 돌, 흙과 지역 특화 아이템으로 디자인하고 수시 공연해도 재미있겠는데 ㅎㅎ...’ 그리고는 나에게 ‘그런데 왜?’ 묻고 나 혼자 대답했다. ‘서울역이 전국 8도로 가는 관문역이잖아. 서울이 8도의 맏형 노릇 해야지. 외국인들도 이 길을 걸어보고는 8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관광효과도 가져오지 않을까.’

그리고 며칠 후 서울시 일을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청계천에서 사람 만날래, 아님 서울로 7017에서?” 그랬더니 친구가 “청계천은 물이 있잖아. 주변도 갈 데가 많고. 공중 길은 한 번 보면 땡. 아직은.” 다시 물었다. “어쨌든 좋지?”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근. 근데 서울시가 조바심 안 부렸으면 좋겠어. 여기 나무와 문화들이 터 잡으려면 5년은 걸리지 않겠어? 야, 그런데 너는 서울 놈도 아니면서... 관심 꺼.”

친구야, 서울 놈은 아니지만 나는 관심이 많다. 서울에서 시간과 돈을 많이 쓰니까. 서울은 한국의 얼굴이니까. 친구야, 서울로 10리 문화길도 조성하고 지금이라도 매년 9월 초쯤 ‘8도 브라더, 투게더’ 축제 하면 안 될까. 한국 최초에 유일한 공중 공원 축제 말이야. 일단 주변에 있는 미술관, 남대문 시장, 만리동 상권, 고층빌딩 미디어 파사드와 LED 광고 대박 날 거잖아. 길은 그렇게 나누며 만들어가는 거잖아.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7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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